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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 손톱
아사노 아쓰코 지음, 김난주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10대에 관한 청춘소설을 읽을 때면 제가 10대였던 시절이 자연스레 떠오르게 됩니다. 지독한 장난꾸러기였던 저와 제 친구들, 새침한 척하지만 좋아하는 아이에게 만큼은 적극적이었던 여자아이들...소설의 장면을 상상하며 읽다보면 저의 그 시절의 풍경 속에 있던 아이들의 모습이 소설 속 내용에 맞춰 희미하게 스쳐 지나가곤 합니다.
<분홍빛 손톱>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이없는 루머에 휘말리는 루리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어이없는 풍문에 솔깃해 했던 그 시절의 제 모습이 떠올랐고, 이별에 가슴아파하는 요스케를 통해선 바보스럽게 놓쳐버린 저의 첫사랑 그 아이가 문득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분홍빛 손톱>에는 제 경험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루리와 슈코의 관계지요. 이 소녀들은 이성에게는 끌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동성인 서로에게 마음을 열지요.
루리는 타인을 향한 '방어막' 같은 게 있던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쉽게 드러내지 않죠. 그래서 가족은 물론 전에 사귀던 남자친구에게조차 무책임하고 무관심하게 대하게 됩니다. 반면에 슈코는 오히려 타인의 편견어린 시선이 누구도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도록 하는 '벽'을 만들어 버립니다. 신비한 능력의 소유자인 그녀는 자신의 그런 능력이 주위의 눈총을 받고 있음을 자각하지만 굳이 숨기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벽이 점점 높아만 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루리와 슈코는 동성이나 이성 관계 모두 온전치 못합니다. 그들은 철저히 소외됐으며 한 사람은 악성루머에 시달리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꺼림칙한 존재로 여겨집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녀들은 만났고, 서로에게 마음이 끌려 처음으로 인간적인 '관계 맺기'를 하게 됩니다.
이로써 루리는 변하게 됩니다. '상관없음'과'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일상이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슈코를 통해서 일상을 비롯한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것은 언니인 키라와 루리의 대화를 통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키라도 루리의 변화가 '사귐'에서 비롯됐다는 걸 느끼지만 그 대상이 '여자아이'라는 것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숨어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조금씩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한 루리와 자신을 둘러싼 벽을 허물고 들어온 루리라는 아이를 마주한 슈코. 여기가 끝이 아니기에 추억은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슈코의 말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은 관계는 계속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또 다시 세상의 편견과 싸워야 될지도 모릅니다. 모진 세상의 풍랑 속에서 숱한 상처를 받을지라도 꿋꿋하게 버텨 이겨내는 당찬 그녀들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