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거타임
오가와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이 <슈거타임>이란 책을 본 사람이라면 한동안 표지에서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 과일이 얹어진 상큼한 느낌의 케이크가 정말로 먹음직스럽게 표지를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표지의 기분에 매료되어 소설읽기는 뒤로하고 간식으로 먹을 것들을 잔뜩 사다가 부려놓고 표지의 케이크가 전혀 부럽지 않다는 듯이 마구 먹어댔다.

한참을 먹는 일에만 열중하다가 손에 묻은 기름기며 설탕가루를 쓰윽 닦고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처음에 느꼈던 상큼함과는 달리 충동적이고 무절제한 주인공의 이상식욕을 다루고 있는 이야기에 배신감과 허탈감을 느낄 무렵, 문득 오가와 요코의 국내 출시작 <임신 캘린더>가 떠올랐다

 <임신캘린더>는 표제작 임신캘린더를 비롯해서 세 작품으로 구성된 단편집이다. 갑자기 이 책을 떠오른 이유는 아마도 <슈거타임>의 가오루와 비슷한 심리상태를 가지는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때문인 것 같다. <임신캘린더>의 각기 다른 세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은 공교롭게도 모두 여자다. 또한 그녀들은 모두 '기다림'이라는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출산'과 타국에 있는 남편과의 '만남'과, 반대를 무릅쓴 '결혼'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기다림이 절실하지 않은 채 뒤로 밀려나 있고 (<임신캘린더>190p) 주인공들이 현실의 다른 일들에 집착하고 있는 점이다. 마치 가오루가 식욕에 집착하는 것처럼...<임신캘린더>의 역자는 이를 두고 중요한 일을 앞둔 여성의 이율배반적이고 혼란스러운 심리를 정교하고 치밀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가오루 또한 그런 것일까?


<슈거타임>에서 가오루는 야구장에서 남자친구를 기다리지만 그는 오지 않는다. 전화를 기다리지만 한참이 지난 후 집에 도착해서야 받게 된다. 물론 이 사건으로 이상식욕이 생겼다고 볼 수 없다. 게다가 이상식욕은 그 이전에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이 작은 실마리를 주는 것도 같다. 가오루와 남자친구인 요시다의 관계는 정말 '무미건조'하다. 남들 다하는 애정표현조차 없다. 당사자인 가오루는 별 의식을 하고 있지 않지만 아마도 그녀의 무의식 저 끝에는 그에게 안기고 싶고, 침을 튀겨가며 수다도 떨고 싶은 지극히 '정상'적인 욕망이 있었으리라...하지만 그런 욕망들은 철저히 무의식의 세계 속으로 가라앉혀야 했으며 꿈틀거리며 그것들이 의식 세상으로 나오면 자신도 모르는 이상식욕이 생겨 다시한번 억누르게 됐을지도...그런 당연한 욕망들을 감추고 억압하다보니 가오루는 요시다의 이별통보조차 슬프지 않다.


결국 가오루의 이상식욕을 없애기 위해선 그녀 안에 억눌려있는 욕망의 끄집어내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성장이 멈춰버린 이복동생 고헤이에 대한 배려가 지나쳐 이성에 대한 자연스러운 감정을 스스로 억눌러야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생긴다. 어쨌거나 그녀 자신이 자신의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게 중요한 점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 그것도 이성에게 말이다.


<슈거타임>은 작가의 첫 장편이라고 한다. 쓰고, 지우고, 고치는 일을 무수히 반복하면서 마침내 완성한 뒤 조심스러우면서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내놓았을 그녀의 첫 성과물이라고 하니 감회가 새롭다. 부디 그녀의 작품들을 꾸준히 만나볼 수 있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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