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을 초월한 이야기는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한다. '낯선 세계'로의 초대와 그 곳에서 좌충우돌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는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색다른 느낌의 재미를 준다. 하지만 그 '낯선 세계'가 전쟁의 한복판이라면 어떨까? 폭격기의 굉음소리와 땅을 울리는 폭탄, 그 가운데 희생되는 사람들이 있는 처참한 환경 속 말이다. 반면에 그 '세계'가 반세기 정도의 미래라면? 달라진 세계에 그리 쉽게 적응할 수는 없겠지만 전쟁의 공포는 없으니 그나마 나은 경우라고 할 수 있을까?
겐타와 고이치라는 두 청년이 우연히 서로의 시대를 맞바꾸는 '시공간의 이동'을 한다는 독특한 설정을 지닌 <타임슬립>은 사실감있게 그려진 시대상황과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돋보이는 소설이다. 2001년의 겐타와 1944년의 고이치는 나고 자란 시대는 다르지만 쌍둥이와 같은 인물로 서로의 시대가 뒤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1944년의 고이치가 돼버린 겐타와 2001년의 겐타가 돼버린 고이치는 처음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하지만 받아드려지지 않을거란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들의 '전신'의 삶을 추적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들이 '원위치'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한편 직면한 현실에서도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뒤바뀐 세계에서 적응하려 했던 그들의 노력은 겐타의 '고이치화'와 고이치의 '겐타화'를 불러오면서 본래의 시대로 돌아가려했던 그들의 바람을 퇴색하게 만들었다. '무지'속에서 시작했던 고이치의 미래생활과 '앎'속에서 시작했던 겐타의 과거생활은 결국 일개 개인의 '어찌할 수 없음'을 보여줄 뿐 이었다.
고이치가 보여준 미나미와의 관계에서는 분명한 '선긋기'과 '인내'가 있었어야 했으며, 겐타가 모든 사실을 아는 '미래인'이자 전쟁의 폐해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자였다면 패전한 전쟁의 의미없는 죽음을 막으려 마지막까지 좀더 노력했었야 했다. 동료를 구한다곤 하지만 마지막 미군구축함으로의 돌진은 그도 한낱 '일본인'이라는 생각을 걷을 수 없게 만든다.
반전 메시지와 함께 무절제한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담긴 의미있는 소설임에도 왠지모를 아쉬움이 남는 건 나 역시 편견어린 시선으로 이 소설을 바라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부디 미나미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성인이 될 무렵에는 모든 상흔과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시대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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