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전설 세피아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저자 슈카와 미나토와는 <꽃밥>, <새빨간 사랑>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 만남이다.
향토적 정취와 사후세계에 대한 묘사가 돋보였던 <꽃밥>과 그로테스크하고 몽환적인 사랑이야기를 다룬 <새빨간 사랑> 모두 비슷한 작품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의 독특함과 괴이함으로 아주 인상깊은 작품이었다. 따라서 이번에 출간되는 작품에 대한 기대도 높았고, 게다가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하니 나의 궁금증은 극해 달해 있었다.

처음에 나오는 '올빼미 사내'는 제목부터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독특한 작품으로 도시의 '전설'로 남고자 했던 한 사내를 다룬 작품이다. 솔직히 책을 읽기 전에는 스파이더 맨처럼 동물과 인간의 돌연변이에 의해서 생겨난 '괴생명체'를 다룬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예측은 보기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괴담'이니 '전설'이니 하는 것들은 일종의 후일담이다. 그러니까 어떤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난 후에 살이 더해지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점차로 확산돼 생기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올빼미 사내'의 경우는 다르다. 사건 이전에 이미 그는 존재했었고, '괴담'이 생기고 난 후에 그에 맞춰 살인을 저질렀다. 도시의 '전설'이 되고자 했던 사내라니...<천사와 악마>에서 인류의 '구원자'가 되려했던 궁무처장이 떠올랐다.

두번째는 '어제의 공원'이란 작품으로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 나오는 타입 립과 비슷한 증상을 겪게 되는 엔도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운명을 거스르면 거스를수록 현실은 더욱 더 비참해 진다는 것...정해진 운명을 바꾸려는 인간의 헛된 노력이 더 큰 피해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교훈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 엔도와 그의 아들 쇼이치가 나누는 대화는 묘한 여운을 준다.

세번째의 '아이스맨'은 이 글이 <새빨간 사랑>을 쓴 작가가 맞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가즈키는 할아버지 댁에서 요양하던 중에 구경갔던 마쓰리에서 논코라는 소녀를 만나게 되고 소녀의 손에 이끌려 말로만 듣던 '갓파'를 보게 된다. 친구가 없던 가즈키에게 애틋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 논코와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느껴지는 '갓파'라는 물건...그로테스크함의 절정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다.

네번째의 '사자연'은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기미히코'라는 화가지망생을 향한 두 여인의 무섭도록 집요한 욕망을 다룬 굉장한 반전이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죽은 자에 대한 왜곡된 형태의 사랑이 불러온 충격적인 이야기에 오싹함을 느꼈고, 점차 베일이 벗겨져 마침내 진면목을 드러내는 한 여인의 광기어린 사랑에 몸서리치게 되었다. 원혼과의 사랑이라니...영화 <사랑과 영혼>처럼 애절한 이야기를 상상했다면 큰 오산이다.

마지막의 '월석'은 간만에 등장한 오사카라는 도시가 반가워지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다.
후지타는 죄책감이 많은 사람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부하직원 모토무라의 퇴직을 막지 못했으며, 어머니의 임종도 지켜드리지 못했다. 언제부턴가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하던 지하철안에서 한 아파트에 나타난 어머니와 모토무라의 환영을 보게 되고, 몸소 그 곳을 방문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은 아내를 퇴원시키고 뒤늦게나마 어머니를 찾아 뵙는 일일 것이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최선의 방법은 바로 죄를 짓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개의 작품 뒤에 있는 이시다 이라의 해설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이 소설집은 충분히 재미있고 훌륭한 작품들이다. 먼저 소개되었던 두 작품(꽃밥, 새빨간 사랑)의 원류가 되는 이 책은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작품들이 보여주는 이름 모를 빛을 발하고 있는 듯하다. 그 빛이 세피아빛이라면 너무 작위적인가? 아무튼 슈카와 미나토와의 이번 만남은 아주 즐거웠고,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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