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까다롭고 유난하고 피곤한 선택들로, 그러나 자신으로선 다른 방법을 생각해낼 수 없었던 유일한 선택들로 이루어진 것이 그녀의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 P41
밤의 고속도로 같은 어둠 속에서 우리는 서로 찌르고 찔리며 꿈틀거린다고. 그러다 죽으면 사라진다고. 그 모든 번민, 선의와 후회가 남김없이 무로 돌아간다고. - P41
차가운 유리잔처럼 섬세한 그 목소리의 표면에, 기묘하게 처연한 슬픔 같은 것이 자잘한 물방울들처럼 응결되었다가 사라지곤 했다. - P66
저토록 눈부시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들이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인아는 나와 함께 재미있어하며 그것들을 들여다보지만, 나처럼 황홀해하지는 않는다. 저런 것들을 믿으면 안돼,라고 그녀는 언젠가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냥, 환영 속을 걷는 거라고 생각해. - P75
내 안에서는 가볼 수 있는 데까지 다 가봤어. 밖으로 나가는 것 말고는 길이 없었어. 그걸 깨달은 순간 장례식이 끝났다는 걸 알았어. 더 이상 장례식을 치르듯 살 수 없다는 걸 알았어. 물론 난 여전히 사람을 믿지 않고 이 세계를 믿지 않아. 하지만 나 자신을 믿지 않는 것에 비하면, 그런 환멸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 P86
부인할 수 없는 인간의 연한 부분.
두 사람이 손가락과 손바닥을 사용해 글씨를 써서 대화할 때, 바싹 깎인 손톱이 상처를내지 않는 순간. - P112
너 자신을 알라, 너의 힘을, 그리고 무엇보다 너의 약점과 한계를 알아라. 네가 어떤 존재인지 파악하라, 너의 위대함은 취약하고 너는 우연적인 존재임을.
주홍색, 금갈색, 흰색이 있어. 혈색, 살, 피부 표현에 쓰는 색들이란다. 렘브란트는 강조해. 그가 그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육체라고. 17세기 초에 등장한, 수은에 매끄러운 유리를 붙여 만든 저 거대한 평면거울들 속에서 샅샅이 살피고 보고 또 보아온 육체, 닳아가는 그 육체. 그가 그리는 것은 자신의 불확실한 진실이야. 그노티 세아우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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