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불꽃놀이 기술, 아니면 헛바람이야." 그는 작품 전체를 통해서건 하나의 디테일을 통해서건, 한 폭의 그림, 한점의 조각, 한 장의 사진이 존재의 감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사실을 좋아했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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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불운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훗날 행운으로 변한 것이 꽤 있는 걸 보면, 살아 있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어제의 일들 ㅣ 정소현 - P329

차마 다 기억할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그것들은 명백히 지나가버렸고, 기세등등한 위력을 잃은 지 오래다. 살아 있어 다행이다. 다행이라 말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 어제의 일들 ㅣ 정소현 - P357

어쩌면 그들은 정말로 세계에서부터 분실된 존재들인지도 몰랐다. 동의 없이 그들을 이 세계로 밀어내고는 향유할 기억과 움직일 수 있는 자유를 빼앗아간 뒤 결국엔 이 어두컴컴한 병원 로비에 방치한 그 최초의 분실자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자의 잔인함에 가까운 무신경을, 끝까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게으름을, 뒤늦게라도 그들에게 이야기를 되돌려주지 않는 고집스러움까지, 그 모든 것을…… - 사물과의 작별 ㅣ 조해진 - P378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원한 타자일 수밖에 없었던 고모의 긴 인내의 시간은 미안하다는 말과 잊어달라는 부탁으로 끝났다. 고작, 그뿐이었다. - 사물과의 작별 ㅣ 조해진 - P379

아무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그냥 하던 대로 했겠지. 말하자면 패턴 같은 것이겠지. 결정적일 때 한 발짝 비켜서는 인간은 그다음 순간에도 비켜서고……가방을 움켜쥐는 인간은 가방을 움켜쥔다. 그것 같은 게 아니었을까. 결정적으로 그, 라는 인간이 되는 것. 땋던 방식대로 땋기. 늘 하던 가락대로 땋는 것. 누구에게나 자기 몫의 피륙이 있고 그것의 무늬는 대개 이런 꼴로 짜이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직조해내는 패턴의 연속, 연속, 연속. - 웃는 남자 ㅣ 황정은 - P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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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처음 보았을 때 바이 부레는 황홀감 대신 허탈감을 느꼈다. 아프리카 사람들에겐 아무런 가치도 없는 돌덩이를 차지하기 위해 벌어지는 전쟁은 프리미어리그의 축구 경기만큼이나 이해되지 않았다. 비록 자신에게 실습용으로 주어진 건석탄을 압축해서 만든 인조 다이아몬드였지만 마치 조상의 뼈와 살을 깎고 있다는 생각에 오금이 저리고 구토가 밀려와 작업대 앞에 채 10분을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 피커딜리 서커스 근처 ㅣ 김솔 - P207

형태가 쓸모를 발명하거나, 쓸모가 형태를 제한한다는 믿음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형태와 쓸모 때문에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자는 거의 사라졌다. 대신 소유의 욕망만이 제품의 가치를 결정하고 그 이후 습관이 소비를 추동할 따름이다. ( 피커딜리 서커스 근처 ㅣ 김솔 ) - P215

영국축구협회는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이 아프리카에서 유괴하다시피 데리고 온 소년들을 정당한 계약서도 없이 유소년 클럽에 가입시킨 뒤 혹독한 훈련을 통해 상품을 만들어내고 있는데도 인권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다. 게다가 전쟁을 방불케 하는 훌리건들의 난동을 예방하기 위한 규칙들을 추가하고 경기장 안팎에 엄중한 경고문들을 내거는 일에 지극히 소극적이다.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은 살인적인 경기일정을 소화하느라 부상을 당하는 선수들의 재활 프로그램에 큰 관심이 없다. 다국적 스포츠용품 업체는 프리미어리그를 후원하고 스타들에게 막대한 광고료를 지불하지만 정작 축구공과 유니폼의 제작원가를 낮추기 위해 저개발국가의 아이들의 노동력을 동원한다. 축구공은 둥글지만 결코 평평한 바닥을 구르는 것은 아니다. - 피커딜리 서커스 근처 ㅣ 김솔 - P218

때때로 무엇인가를 붙잡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삶이, 그녀 앞에 놓인 삶이 버둥거림의 연속이고, 또한 기도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더 이상 기도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 제발 내가 또다시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지 않게 도와주세요. 그녀는 얼마나 자기 자신이 기도를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랐던가. - 임시교사 ㅣ 손보미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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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든 게 그랬다. 모두 다 불투명하고 불확실하다는 것만이 진리였다. 눈앞을 죄다 가리는 돔 하늘과 황사는 잘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보다 믿을 수 없는 건 나 자신이었다. - P135

희망이 없으면 자유도 없어. 있더라도 막막한 어둠처럼 아무 의미나 무늬도 없지.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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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까다롭고 유난하고 피곤한 선택들로, 그러나 자신으로선 다른 방법을 생각해낼 수 없었던 유일한 선택들로 이루어진 것이 그녀의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 P41

밤의 고속도로 같은 어둠 속에서 우리는 서로 찌르고 찔리며 꿈틀거린다고. 그러다 죽으면 사라진다고. 그 모든 번민, 선의와 후회가 남김없이 무로 돌아간다고. - P41

차가운 유리잔처럼 섬세한 그 목소리의 표면에, 기묘하게 처연한 슬픔 같은 것이 자잘한 물방울들처럼 응결되었다가 사라지곤 했다. - P66

저토록 눈부시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들이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인아는 나와 함께 재미있어하며 그것들을 들여다보지만, 나처럼 황홀해하지는 않는다. 저런 것들을 믿으면 안돼,라고 그녀는 언젠가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냥, 환영 속을 걷는 거라고 생각해. - P75

내 안에서는 가볼 수 있는 데까지 다 가봤어. 밖으로 나가는 것 말고는 길이 없었어. 그걸 깨달은 순간 장례식이 끝났다는 걸 알았어. 더 이상 장례식을 치르듯 살 수 없다는 걸 알았어. 물론 난 여전히 사람을 믿지 않고 이 세계를 믿지 않아. 하지만 나 자신을 믿지 않는 것에 비하면, 그런 환멸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 P86

부인할 수 없는 인간의 연한 부분.

두 사람이 손가락과 손바닥을 사용해 글씨를 써서 대화할 때, 바싹 깎인 손톱이 상처를내지 않는 순간. - P112

너 자신을 알라, 너의 힘을, 그리고 무엇보다 너의 약점과 한계를 알아라. 네가 어떤 존재인지 파악하라, 너의 위대함은 취약하고 너는 우연적인 존재임을.

주홍색, 금갈색, 흰색이 있어. 혈색, 살, 피부 표현에 쓰는 색들이란다. 렘브란트는 강조해. 그가 그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육체라고. 17세기 초에 등장한, 수은에 매끄러운 유리를 붙여 만든 저 거대한 평면거울들 속에서 샅샅이 살피고 보고 또 보아온 육체, 닳아가는 그 육체. 그가 그리는 것은 자신의 불확실한 진실이야. 그노티 세아우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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