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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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사량의 방사능이든 맹독성 낙진이든, 그 어떤 재해도 인간만큼 파멸적이지 않다. 재해는 오히려 지상 최대의 재난인 인간이 떠나가게 하여 동식물의 낙원을 되돌리곤 한다. - P226

사실 나는 늘 내가 사는 이 세상을 낯설게 느꼈다. 이만하면 그래도 살 만큼 살았는데도 늘 내가 여기에 잘못 끼워진 조각 같아서, 숨만 쉬어도 쑤시고 움찔거리기만 해도 마음 어딘가가 긁히곤 했다. - P262

어린 날에는 내 아픔이 다 밖에서 온 줄 알았다. 내가 본래 가진 것은 다 좋고 빛나는 것뿐이고 내게 있는 어둠은 다 세상이 주었다 믿었다. 하지만 어쩌면 슬픔은 처음부터 내 생명에 깃들어 있었으리라. 어떤 사람은 그렇게 심장에 가시를 박고 태어나는 모양이다. 아리고 쓰라리고 서러운 것이 애초에 내 영혼에 깃들어 있었고 단지 너처럼 좋은 인연이 있어 보듬고 달래주었을 뿐이더라. - P269

그러니 나는 여기 머물고자 한다. 이곳이 내 세상이니. 이 낯섦이 내가 원한 것이니. 이 삐걱거림이 내 갈망이었으니. 저 너머의 내가 바란 것이 바로 내 이 삶이니.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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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오랫동안 그 많은 사람이 이 유적을 원형의 모습으로 유지하고자 보수해왔을까. 인류는 신기하게도 오래전부터 물질이 아닌 원형의 설계에 동일성의 가치를 부여해오지 않았던가. - P160

나는 내 이어진 죽음을 생각했고 이어진 생명을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죽음 속을 걷고 있든 생명 속을 걷고 있든,
별로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가 아름답고 살아 있는 것들은 눈부시며,
중요한 것은 내가 아니니…… - P165

자연은 한 가지 원인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동일한 원인이 반대로 키바를 춥게 할 수도있었다. 자연에 생겨난 상처는 사람에게 생겨난 상처처럼 양극단 어딘가로 움직이는데 어느 극으로 갈지는 모른다. 중요한 것은 태양광에서 쏟아지는 유해한 것들과 대낮에 작열하는 열기가 우리가 견딜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 P185

우리는 그리 많이 생각하지 않았다. 기차는 우리를 피로하게 했고 뭔가를 생각하기에는 늘 피로했다. 누군가가 간혹 생각을 하면 그 생각은 전체의 것이 되었다. 때로는 그 의견이 남의 의견이었는지 내가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것인지도 헷갈렸다. 일을 할 때는 대화 없이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 P188

우리는 계속 어떤 과정 사이에 있었다. 마음을 정착할 수가 없었다. 하염없이 무엇인가를 기다렸다. 무엇을 하려 하든 ‘아아, 그래, 도착한 다음에 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떠날 곳도 도달할 곳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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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송기를 통과하든 통과하지 않았든 우리는 매 순간 사라져 없어지고 있어요. 우리는 순간이라는 신비 속에 잠시 존재했다 사라지는 허상이며, 그런 의미에서는 실상 존재하지도 않아요. 우리가 일관성 있고 서로 연결된 개체라는 착각은 딱 하나에서 오는 거예요."
권현수는 제 머리를 가리켰다.

"기억이죠. 정보예요. 물질이 아니라 정보가 개체를 이어주는 거예요
…… 수녀님은 전송하기 전에도 매일매일 이전의 자신과 다른 존재였어요.……"

그는 다시 다른 전송기로 들어갔고, 내 기준에서는 또 죽었다. - P129

결국 개체의 이어짐도 기적이다. 나의 연속성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내 생명도 설명할 수 없다. 우리가 생명이 시작된 이래 그렇게 살아왔기에 굳이 이 신비를 의심하지 않을 뿐이다. - P151

영혼은 어디에 머물러 있다가 내게 날아와 안착하는 걸까? 유전자의 네 가닥 속에? 원소와 원소를 이은 자기장 흐름 사이에? 전송된 내 설계도 틈새에?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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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주인공인 게임은 여성향일까, 남성향일까? 게임 주인공은 유저가 이입하는 대상인가, 아니면 욕망하는 대상인가? - P30

이세연은 늘 그런 선택지에 더 재미있는 시나리오를 배치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아이들이 그 선택으로부터 배울수 있다고. 선량한 선택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리라 믿게 된다고. 마찬가지로 팀장도 사장도 투자자도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문제라 시나리오 작가 혼자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 P43

우리 인생도 선택으로 가득해. 하지만 그래봤자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왜냐하면 어차피 평생 갈 수 있는 길이 하나뿐이라면 결국 안전한 선택을 할수밖에 없으니까……영웅적인 선택도 바보스러운 선택도 할 수가 없어. 원하지 않는 길을 어쩔 수 없이 가야 한다고. 그렇게 우리는 다 자신의 인생에서 소외되는 거야…… 하지만 게임은 그렇지 않아. 선택지가 나타났을 때 알게 되는 거야 ‘나는 저 모든 길을 다 갈 수 있겠구나‘ 세계의 이면을 다 보고, 모든 가능성의 경로와 결과를 다 볼 수 있겠구나...... 그걸 알게 되는 순간 내 게임을 하는 사람은 세계의 주인공이 되는 거야. 그게 바로 게임이야. 그게 진짜 게임 시나리오라고. - P46

끔찍하도록 지루하고, 밸런스가 형편없이 망가져 있고, 좋은 결과는 선택이 아닌 극단적으로 낮은 운에 의지하며, 수천만 원을 쏟아부어야 겨우 적절한 밸런스를 찾을 수 있는 그런 게임들이 회사에 돈벼락과 높은 빌딩을 안겨주었다. - P47

돈이야. 돈이 현실감을 주지. 누가 얼마나 많은 돈을 게임에 퍼부었느냐에 따라 대우를 다르게 해주는 거지. 서민들은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부자들에게 그들이 때려 넣은 돈만큼 보상해주는 거야. 그 막대한 자본력을 보며 유저들이 경탄하고 찬사를 바치게 하는 거지. 그러면 그 돈을 가진 사람이 주인공이자 영웅이 되는 거야. 그 사람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모든 선택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그게 밸런스야. 그게 공정함이야. 진짜 현실감 넘치는 시나리오지. 현실과 똑같으니까. 유저도 좋다고 몰려오고 회사도 떼돈을 벌고. - P67

예측할 수는 있지만 예측을 살짝 벗어나는 이벤트로 유저를 놀라게 할 것. 이벤트를 볼 확률은 높게, 하지만 놓쳤을 가능성을 상상하게 하여 그 일이 특별한 일처럼 느껴지게 할것. 그래서 믿게 할 것. 당신이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영웅적인 선택도 바보 같은 선택도 할 수 있는, 누구보다도 중요하고 특별한 사람이라고. - P77

쓰지 않는 물건은 사라진다. 인적이 드문 장소는 없어진다. 때로는 산이나 개울이 없어지고 어느 날에는 마을 하나가 통째로 자취를 감춘다.
그러니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계속 쓰거나 지켜보아야 한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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