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이 입을 열어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의 말이 소름 끼칠 만큼 분명하게 들린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하찮은 하나의 문장도 완전함과 불완전함, 진실과 거짓, 아름다움과 추함을 얼음처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혀와손에서 하얗게 뽑아져나오는 거미줄 같은 문장들이 수치스러웠다. 토하고 싶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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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개인의 책임이 아닌 경우가 훨씬 많다. 이런 말은 그들이 그저 미련했기에, 노력하지 않았기에 가난하게 죽는다고 말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미련하지도 않을뿐더러 몸을 갈아가며 노력한 사람들이 가난하게 죽는 것을 나는 너무나도 많이 봤다. 그들 중 많은 수는 오히려 주어진 책임을 저버릴 수 없어 평생을 기꺼이 억척스레 떠안고 살았기에 가난했다. - P223

개화할 정도로 충분히 쌓아 온 노력이 좋은 때를 만나 결실로 구체화하는 게 성공이 아닐까. 그러니 남들이 운이 먼저라고 하든, 노력이 먼저라고 하든, 또 다른 뭔가가 먼저라고 하든 일단은 멈춰서 고민하기보다 뚜벅뚜벅 제 길을 갔으면 좋겠다. - P233

누가 뭐라건 자기 의지로 걸어야 한다. 외부에서 유발한 동기는 가치도 효용도 없다. 내부에서 유발한 동기만이 나를 투과하지 않고 남는다. - P233

‘여지‘란 말의 사전적 정의는 ‘남은 땅‘이다. 누굴 욕하든 궁지에 몰든 몰아붙이든 그 사람이 숨이라도 한번 크게 쉬도록 그의 남은 땅은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고 까치발로라도 서 있을 수 있도록 한 뼘이나마 남은 땅을, 여지를 줘야 한다. - P264

개인적인 행복과 타인의 불행을 동시에 마주하는 순간에도, 때로는 죄책감으로 때로는 감사함으로 삶을 이어간다. 삶은 이토록 모순적이고 불가해하다. 감히 번역해 낼 수 없을 만큼.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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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한심한 시절’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어설프고 한심하고 그저 즐겁고 우스꽝스럽던 시절이. 그런 시절은 단순히 낭비된 시간이 아니라 인생의 중요한 자양분이 되는 시간이다. 사회적 기대나 압박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이 인생에서 그리 길지 않다. 그래서 그때 느끼는 교감들은 여러 가지 득실 계산이 자연스레 개입하는 나이가 되면 절대 갖지 못한다. 그렇게 쌓인 청년기의 한심한 기억들은 놀랍게도 성년기를 위한 완충지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람에게 상처받고 지칠때마다 그 충격들을 완화해 주는 두꺼운 스펀지처럼. 그러니 너무 건설적으로만 살려고 아등바등할 것 없다. 목적 없이 흘려보낸 한심한 시간이 역설적으로 언젠가 가장 쓸모 있는 기억이 되기도 하니까. - P147

자식들은, 특히나 궁하게 자란 자식들은
그저 부모의 인생이 불행했을 거라고 넘겨짚는다.
하지만 부모의 인생은 부모의 인생대로 희로애락이 있었을 거다.
어떻게 나는 그 시절을 한번 물어볼 생각도 않고
당신의 불행을 멋대로 단정했을까. - P167

반복된 농담이 사회적 인식을 형성하는 과정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 이 밑도 끝도 없는 확증 편향의 반복이 결국 결혼을 지옥으로 보이게 한다. - P174

생각해 보면 이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사람은 보통 셋이 이야기할 때 둘이서 다른 한 명을 철저히 무시하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린 너무나 당연하게 아이 앞에서 이렇게 대화해 왔다. 아이가 대화를 알아들을 리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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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자기 의심이 많은 사람은 자괴감에 시달릴 때면 평소보다 나를 더 모질게 괴롭힌다.

‘네가 지금껏 한 게 뭐가 있느냐, 네 능력이라 봐야 고작 이 정도다, 네가 해 온 일들은 아무 가치도 없다, 주제 넘는 꿈꾸지 말고 관둬라‘

그럼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그 얘길 곧이곧대로 믿으려 든다. 아마도 모든 죄를 자진해서 뒤집어쓰는 자기혐오가 내 일이 안 풀리는 까닭을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일 거다. 단순히 내가 못났기 때문이라고 해 두면 고민할것도 괴로워할 것도 없다. 그대로 놓아 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런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지금까지의 여정을 심하게 오역해 버린다. 내가 쌓아 온 것들을 까맣게 잊고 그저 나를 탓한다. 그게 쉬우니까. 나를 때리는 게 가장 만만하니까. - P46

분명 계획대로 뚜벅뚜벅 가고 있으면서도 가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며 의도적으로 내 여정을 오역했다. 지쳐서, 다 놓고 쉬고 싶어서. 다시 내 원문을, 내 여정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정역해 봐야 그 정역이 너무나 보잘것없을 게 뻔하니까. 또 그 정역에 실망할 게 뻔하니까.
맞다. 그렇게 나온 정역은 궁색하고 보잘것없고 대단찮다. 그런데도 결국 날 붙들어 주는 건 그 볼품없이 왜소한 정역이다. - P47

실체도 없는 깊이를 추구하려다 자살을 택한 화가의 강박, 애초에 그 강박을 떠안긴 평단과 대중은 외려 작가에게 어리석은 강박이 있었다며 책임을 떠넘긴다. 아니, 책임을 떠넘기는 게 아니라 애초에 책임을 자각하지도 못한다. "이 화가의 후기 작품에서는 깊이를 향한 강박이 보인다."라는 문장은 가해자가 가해를 자각하지도 못하고 피해자를 동정하는 잔인한 모순을 단 한 줄로 완벽하게 완성한다. - P82

애초에 그 길을 택한 이유는 모두가 인정하는 눈부신 결과를 내고자 함이 아니라 그저 그 길을 걷는 것이 행복했기 때문이다. 존은 그 길에 인생을 걸지 않아서, 혹은 영혼을 바치지 않아서 안 풀린 게 아니다. 존은 이미 오래전부터 인생의 전부를 갈아 넣어 왔다. 문제는 이미 하루하루 어린시절 자기의 맹세를 지키며 살아왔음에도, 자꾸만 모두가 나만 빼고 나아가는 것 같으니 그 조급함에, 결과에 집착하게 된 것뿐이다. - P106

열심히 하면 높은 확률로 뭐든 되기는 된다. 그런데 그 ‘열심’이라는 게 반드시 올인일 필요는 없다. 그렇게 무턱대고 영혼을 갈아 넣어 성공했다는 사람들도 사실은 그 정도까지 올인한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미디어에서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말라고 하고 싶다. 꿈을 향해 날아가려면, 역설적이지만 반드시 현실이라는 땅에 한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 부디 영웅담 같은 것들에 휘둘리지 않으면 좋겠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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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의를 애써 감추고 있는 까칠하고 까다로운 문장을 번역할 땐 평소보다 많은 애정을 쏟아 원문을 살펴야 한다. 아무리 실력 좋은 번역가도 겉으로 보이는 문자만 보고 직역하다간 정반대의 오역을 내놓기 일쑤다. 남들은 오역하고 몰라주더라도 우리끼리는 좀 더 애정을 쏟아 서로의 원문을살펴야 하지 않을까.

화가 들입다 많은 우리끼리는.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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