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으로 폐허가 된 자신을 그릴 때 그 고통은 표현의 기쁨으로 해소되었을까? 오히려 엄습하는 고통을 거듭 되새기며 더 깊은 고통 속에 머무르게 했던 건 아닐까? - P219

날아가는 검은 티티새 같은 눈썹으로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고 있다. 빗방울처럼 쏟아지는 눈물도 방해하지 못했다. - P221

우리는 백골로 남게 되고 그마저도 풍화되어 한 줌의 먼지가 될 운명이지만 자연은 영원의 이름으로 존재를 감싸게 될 것이니, 이것은 위로의 순간이라 해야 할까, 초월의 순간이라 해야 할까? - P245

출생지나 교육환경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 몸담고 있는 그곳에서 어떤 일을 했는가, 그것이 미국의 예술을 만든다고 그녀는 믿었다. - P250

그가 지난날 몰두하던 죽음은 내면에만 존재하지 않고, 이제 도처에 있었다. 이 어두운 세계를 예술로 돌파하려면 그 죽음들을 다시 바라보아야 했다. 자신의 내부를 응시하던 두 눈을 세계를 향해 돌렸을 때 그의 눈에 띄었던 것은 어쩌면 자신의 몸을 감싸주던 색색 가지 이불이었을지도 모른다. - P282

서로를 끌어안는 것만큼 인간적인 행동은 없다. 에곤 실레의 그림처럼, 인간의 몸은 서로를 끌어안으라고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안고 보듬으며 사랑을 나누고 열매를 맺는 것.
1918년의 사람들이 바랐던 것은 단순히 그것이었을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감정, 아직 살아있다는 느낌, 바로 그것.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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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가 된다면 훨씬 앞서가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 보겠지만 좋은 예술가는 천재의 뒤를 좇으면서 그동안 사라진 끈을 복구시켜야 한다."

천재 예술가와 좋은 예술가, 그는 그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았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언제나 좋은 예술가 쪽에 있었다. - P170

세잔은 자신의 눈, 자신의 감각을 믿으며 보이는 것들 사이의 기적 같은 마법을 읽어내려 했다. 그것이 자연의 본질이라 믿었다. 그렇게 바라보는 한 세잔의 산은 언제까지나 미완성이며, 미완성인 채로 완성이다. - P194

세잔도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정확히 무엇을 향해 가는지 알지못했다. 언젠가 세잔은 ‘모티프‘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질문을 받았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곰브리치가 말한 대로, 그는 정확한 소묘를 무시한 이 순간이 미술사의 대전환이 되리라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이것이 앞으로 무엇이 될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처럼.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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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에서 느낄 수 있는 공포와 혼란과 각성은 팬데믹을 거쳐 포스트 팬데믹을 통과하는 지금과도 여실히 맞닿아 있다. 재난 이후의 어지러운 세계에서 과연 어떤 예술이 이 세계를 규명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예술이 과연 가능할까?"라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다. 어쩌면 백여 년 전, 전쟁과 질병을 한꺼번에 겪은 그 시절 예술이 하려 했던 일들을 살펴보는 것이 지금 이 시대에도 도움이 될 듯하다. - P106

"나는 예술로 삶의 의미를 설명하려고 하는 거야. 나는 자기의 심장을 열어젖히는 열망 없이 탄생한 예술은 믿지 않아. 모든 미술과 문학, 음악은 심장의 피로 만들어져야 해. 예술은 한 인간의 심혈이야!" - P120

뭉크에 비추어보면, 예술가란 보이지 않는 것들 속에서 불꽃같은 의미를 찾으며, 스스로 불안과 불행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사람이다. - P122

피투성이 예술가 뭉크는 사랑이라는 진폭이 큰 감정에도 달빛을 보는 차분한 밤과 같은 느린 파동의 감정들이 존재하고, 때론 느린 파동의 감정이 생을 이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 P124

세련되거나 정교하지 않은 꽃, 꽃잎은 날카롭고 검은 씨앗이 쏟아질 듯 들어찬 꽃, 꽃에서 씨앗까지 생의 고리가 한눈에 보이는 꽃, 태양을 따라 움직이는 꽃이었다. 반 고흐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태양은 기독교 신앙에서 신의 대체물이자 자연의 원천으로 본다. 한때 목회자가 될 생각도 가졌던 반 고흐는 하늘을 우러르는 해바라기의 성정에 이끌렸을지도 모른다. 노랑은 태양의 색이자 땅의 색이었다. - P130

반고흐는 어떤 장면이든 사건의 중심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그의 그림은 너무도 많은 영감으로 가득해서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다. 우리를 부둥켜안고 뜨거운 악수를 건네는 것만 같다. 테오에게 보낸 무수히 많은 편지처럼, 그의 그림은 우리에게 보내는 마음으로 가득한 편지글이다. - P146

그림은 우리를 거센 바람이 부는 드넓은 밀밭으로 데려가, 강한 바람 속에서 겨우 몸을 가누며 거대한 자연 앞에 서있는 화가를 보게 한다. 화구통에 담긴 녹색과 노랑과 푸른색의 튜브 물감, 돈이 없어 식사를 거르더라도 최고급을 고집했다던 그 물감, 그러다 마음이 무너지면 삼켜버리기도 했다는 그 물감이 이룬 것들을 보게 한다. - P150

그림은 이겨내겠다는 마음으로 전쟁을 치른 화가의 노획물이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파도처럼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은 붓질과 두껍게 발린 물감은 캔버스에 존재하는 화가의 실존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 P151

케테 콜비츠는 가난한 사람들이 주인공인 피에타를 그렸다. 그 어머니를 위로하되 종교적인 의미는 조금도 담고 싶지 않았던지, 후광은 반짝이는 금색이 아니라 현실적인 흙의 색에 가깝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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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에서 수련은 중요하지 않다. 수련이 제대로 표현되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빛과 색이 창조한 마술 속에 기꺼이 갇히고 거두어지는 순간에 빠져들 뿐이다. 마법 같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세상은 움직임을 멈추고 우리는 생각을 멈춘다. 아주 잠시라도 그 영원 속에 잠겨있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의 세상 속으로 되돌아가기 전까지. - P35

마네는 모두가 존경하는 대가들의 작품을 박물관의 높은 벽에서 꺼내어 일상 생활을 담아내는 프레임으로 활용했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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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는 것은 사유하는 것이며, 세상을 자기만의 언어로 바꾸는 것이다. 화가는 그리는 사람이기 전에 보는 사람이었다.
......그림은 우리를 화가들이 집요하게 자신의 세계를 펼쳐놓은 그 시간, 그곳으로 불러들인다. 거기엔 미술사에 적힌 예술가가 아닌, 진정으로 자신의 세계를 형성하고자 한 사람이 있다. - P7

걸작들은 망각의 어둠을 견딘 다음에야 ‘발견‘되었고 미술사에 한 자리를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연 것은 그림 그자체가 아니라 그림을 향한 모험과 발견이다. 그러므로 작품은 바라보고 감탄하고 해석하며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것이다. - P8

치열하게 바라보며 힘껏 살아낸 순간들이 우리를 더욱 단단한 곳으로 옮겨놓는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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