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민은 반복되는 좌절을 통해 삶에서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기대를 저버리는 일의 시작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기대감은 탁월한 적응력을 지닌 자생식물처럼 가슴 한편에서 끈질기게 싹을 틔웠다. - P55
우리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떠올리면 다른 문제들도 덩달아 별일 아닌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오늘처럼 반갑게 눈이 내리는 순간에도 생각났다. 그 글귀가 들뜨지 말라고, 헛되이 기대하지도 말라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 엄정한 과학적 진실은 좋음으로도 나쁨으로도 귀결되지 않는다. 수민에겐 그 점이 의지가 되었다. - P58
수민은 오늘 아침 밥알처럼 부풀었던 마음의 정체가 다름 아닌 슬픔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수민이 오랫동안 공들여 구성한 세계가 무너지고 난 자리에 생겨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슬픔은 기대나 희망의 반대말도, 포기나 좌절의 표현도 아니었다. 단지 슬픔 그 자체로 수민 안에 태어나 마음속 어둠을 밝히는 무언가였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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