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으로 충만한 이 폐부 깊숙한 곳으로부터의 외침을 일러 ‘사실주의‘라고 해. 무엇보다도 진실을 재현할 것을 맹세하면서 거슬리고 모순적인 현실의 모든 양상을 있는 그대로 느끼게 하려는 예술사조지. 삶은 불완전하기 마련이야. 하지만 거기에 살아가는 묘미가 있단다. - P254
어떤 창조물이 육체성을, 적실성을, 나아가 세계의 조직 속 필연성을 갖추는가 갖추지 못하는가 하는 문제는 언제나 질료를 어떻게 쓰는가에 달려 있다. - P264
살면서 처음으로 느끼는 부당함의 감정은 흔히 아주 작은 일에서 비롯되고, 그 여파의 규모는 원인이 된 일의 크기에 반비례한다. 장자크 루소는 『고백록』에서 오십 년 전 집에서 벌어진 한 사건을 언급하며 자기 잘못이 아니었음을 밝히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다. 누군가 머리빗의 살을 부러뜨렸는데 아무 짓도 하지 않은 그가 혼났다는 것이다. 물건이 망가졌고 부당하게 체벌을 받았다는 이 하찮은 사연이 훗날 철학자가 될 이의 존재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했고, 자유주의 유럽 전체에 영향을 미칠 문학적 정치적 사상을 불어넣었다. 그렇다. 현대 민주주의 체제들을 이어주는 사회계약 속에 부러진 빗 하나가 있는 것이다.…… - P278
영국인들이 쓰는 말 중 ’bigger than life‘라는 기막힌 표현이 있지. 실물보다 크다. 그게 이 사진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거야. 흐릿한 것에는 실제보다 더한 뭔가가 흘러들지. - P297
피라미드는 먼 과거에서 나온 것인데도 현대성의 정점을 상징한다고. 여기 그려진 이 역도 피라미드의 희미한 기억, 심지어는 그 부활과도 같다고 말이지. - P317
이 작품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건, 삶이 그저 살기 위한 것이어선 안 된다는 거야. 삶을 춤출 필요도 있어. 우리의 동작, 우리의 움직임, 우리의 행동이 세상만사의 일상적인 흐름, 관습과 제약에 따른 기계적이고도 끝없는 이어짐에서 가끔 벗어난다 해도 괜찮아. 조금 떨어져나가도 괜찮단다. 그게 자기 삶을 춤추기 위해서라면. - P332
운명의 바퀴를 통해 번존스는 운명이란 변덕스럽다는, 옛 세대로부터 내려온 생각을 구체화시켜. 제아무리 가장 강력한 제후, 가장 완벽한 시인이라고 한들 행복과 재능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지. ‘모든 것은 흘러가‘니까......"
"Panta rhei!" - P351
아름다운 삶을 즐긴다는 건 멋진 일이야. 하지만 행복할 때 모든 것은 표면을 겉돌며 반짝거려. 멜랑콜리는 우리 안의 균열이기 때문에, 세계의 의미와 무의미를 들여다볼 수 있는 틈을 내서 심연을, 깊은 곳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단다. 예술가들은 그걸 알기 때문에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 멜랑콜리를 가꾸지. - P353
네가 말한대로 행운의 여신은 예뻐. 기쁨을 안겨주기 위해서인 동시에 괴로움을 안겨주기 위해서지. 게다가 번존스가 보기에, 괴로움은 기쁨을 품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 P353
늙음이란 육체적 퇴락과 뗄 수 없는 관계임이 분명해. 동시에 이 예술가는 ‘중년‘에 접어든다는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주관적인 차원으로도 우리의 관심을 이끌어 가지. 그게 언제냐, 바로 스스로가 젊은 시절을 떠나고자 할 때, 젊은 시절로부터 등을 돌릴 때야. - P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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