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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등뼈가 마지막에 남는다
샤센도 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1월
평점 :

#일본소설 #책의등뼈가마지막에남는다 #샤센도유키 #김은모 #블루홀6 #협찬도서
* 올해 처음으로 받은 서평책은 블루홀6의
『책의 등뼈가 마지막에 남는다』였다.
애정하는 작가 샤센도 유키의 신간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표지가 말 그대로 미친 퀄리티였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여성의 몸,
‘포로가 될 테니 읽지 않는 게 낫다’는
노골적인 경고가 적힌 띠지까지.
총 7편의 이야기로 구성된 이 책은
제목처럼 책등이 뼈처럼 드러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샤센도 유키가 이번에는 어떤 이계를 보여줄까.
펼치기도 전부터 이미 함정에 빠진 기분이었다.
* 책을 펼치자마자 나는 샤센도 유키가 만들어 놓은
이계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한 여행자가 만나게 된 한 권의 책.
그런데 그 책은 맹인이었다.
양쪽 눈은 달군 쇠막대로 지져 뭉개졌고,
참혹한 화상 흉터 위에는 반짝이 가루가 덧칠되어
마치 얼굴을 가로지르는 강처럼 보였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아, 이 작가는 역시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 상복처럼 새까만 드레스에는
색색의 끈들이 달려 있었는데,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며 ‘가름끈’이라 불렸다.
그렇다. 이곳은 폐가 있는 책이 존재하는 나라였다.
이 나라에서는 원칙적으로
한 권의 책이 담을 수 있는 이야기는 하나뿐이지만,
여행자가 만난 그 책은
무려 열 가지 이야기를 품고 있었고
사람들은 편의상 그것을 ‘열’이라 불렀다.
* 이 작은 나라에서는 종이책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이야기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종이 대신 선택된 것은 인간이었다.
인간은 이야기를 기억하고,
요청이 있을 때 그것을 들려주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극히 드물게 ‘오식’이 발견될 때,
즉 책들이 전하는 이야기 사이에
차이가 생기면 ‘중판’이 진행된다.
* 새장 안에 갇힌 두 권의 책이
뜨거운 불길 속에서
누구의 이야기가 옳은지를 두고 논쟁을 벌인다.
옳다고 인정된 쪽은 살아남고,
틀렸다고 지목된 쪽은 파본 처리된다.
이 장면을 지켜보는 순간,
독자는 왜 ‘책의 등뼈’가 마지막에
남는지 몸으로 이해하게 된다.
* 종이책이 금지된 나라에서
종이 대신 인간이 선택되었다는 설정도 충격이었지만,
책이 ‘책’으로서 지니는
긍지와 자존심은 그 이상으로 인상 깊었다.
그 안에서 ‘열’은
아무도 가지지 않은 열 가지 이야기를 품은 존재였고,
이번에는 ‘백행 공주’,
우리가 알고 있는 백설 공주 이야기로
중판에 들어가게 된다.
* 중판의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그 불길의 열기가
내게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도대체 몇 번이나 감탄했고,
몇 번이나 숨을 삼켰을까.
첫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나는 거의 환호에 가까운 감탄을 터뜨렸다.
독특한 세계관과 추리소설 같은 논리로
상대를 압도하는 전개는
정말 ‘자발적 포로’가 되기에 충분했다.
저 여기 있어요!!!!
잡아가세요!!! 정말로요!!!!!!!!!!
* 이외에도
「죽어도 주검을 찾아 줄 이 없노라」,
「도펠예거」,
「통비 혼인담」,
「금붕어 공주 이야기」,
「데우스 엑스 테라피」까지.
총 다섯 편의 이야기는
각각 다른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분명히 샤센도 유키만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 도사린 잔혹함,
이중성과 이기심으로 뭉친 다수가
소수를 희생시키는 구조,
그리고 작가 특유의 SF적 상상력까지.
몇 번을 다시 읽어도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 첫 이야기와 마지막 이야기가
‘열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가운데 놓인 다섯 편의 이야기는
열이 품고 있던 또 다른 열 가지 이야기의 일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한 건,
내용을 그대로 상상하면 꽤나 잔혹하고
그로테스크한데도
묘하게 아름다워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 포로라 불러도 좋고, 노예라 불러도 좋다.
뭐가 됐든 나는 이미 완전히 홀려버렸으니까.
살면서 나보다 어린 여자에게
이렇게까지 홀려본 건 처음이다.
유키 동생,
언니는 앞으로도 기꺼이 네 포로가 될게♥
* 출판사 도장깨기 64/94
@blueholes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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