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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의 문을 지나는 자
이지현 지음 / arte(아르테) / 2025년 4월
평점 :

#한국소설 #차원의문을지나는자 #이지현 #아르테
* 이번 달, 나는 지독한 책태기에 빠져 있었다.
좋은 작품을 읽고 나서 오는 달콤한
진통 같은 책태기가 아니라,
지침이 축적돼 터져버린 피로의 책태기였다.
9월부터 단 하루도 쉬지 못했던 일상이
끝나자마자, 마침내 찾아온 여유를 핑계 삼아
책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극복 방법은 잘 알면서도…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불 속 게으름에 더 머물고 싶었다.
* 그러던 와중, 어제 본 누리호 발사
장면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버티고,
더 많은 책임을 끌어안고,
더 깊은 곳에서 묵묵히 일했을 이들의 성과.
그 뜨거운 장면을 보니 나도 다시
무엇이든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가장 얇고 가장 손이 가는 책을 펼쳤다.
바로 『차원의 문을 지나는 자』.
* 책은 아귀로 살아가야만 했던
영혼들의 세계에서 시작된다.
타는 듯한 목, 지독한 갈증, 부풀어 오른 배,
빠져버린 머리카락…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는
외형과 반복되는 고통의 하루.
아귀 세계에서 요하의 삶은 늘 똑같았다.
* 쓰레기를 뒤져 먹을 것을 찾고,
생존을 위해 싸우고,
끝없는 갈증에 시달리는 날들.
하지만 요하는 다른 아귀들과는 달랐다.
기억은 없지만, 마도 제왕을 통해 자신이
원래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늘 인간 세계로 돌아갈
꿈을 꿨지만, 현실은 잔혹했다.
* 요하를 인간 세계에서 납치해와
결국 버려버린 마도 제왕.
그는 과연 사랑했다 말할 수 있을까.
폭력적인 그의 정치 속에서 아귀들은
늘 굶주리고 더 깊은 욕망에 사로잡혀 갔다.
그때 요하와 인연이 있는 천신,
천우가 나타난다.
그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마도를
몰아내고 아귀 세계의 제왕이 된다.
* 천우 아래에서 사람들은 처음으로
‘진정한 제왕’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복종이 아닌 신뢰로 따르고,
누구보다 요하를 지키고자 움직인다.
그리고 천우는 이번에도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으려는 요하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차원의 문을 열어
요하를 인간세계로 보내준다.
다시 제왕의 자리를 찾으려는 마도와
천우를 마음에 두고 있는 또 다른 이가
어떤 음모를 꾸미는지 알지 못한 채로.
* 이 책 속의 아귀 세계는 어쩌면
우리의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힘이 없으면 먹히는 구조, 끝없는 욕망,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신의 고귀함을
잃지 않으려는 몇몇 존재들.
아귀로 태어났어도 아귀로 살길 거부하는 이들.
그 작은 희망이 오히려 더 크게 마음을 울렸다.
*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차분해졌다.
스토리 자체는 아주 썩 끝내준다고 말은 못하겠지만
잔잔한 바람이 몰고 오는 기분 좋은 편안함이 있었다.
새로운 변화, 다시 움직이고 싶은 나에게
아주 알맞은 타이밍에 찾아온 책이었다.
* 어떻게 보면 아귀로 태어난 요하가
인간 세계에서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 자체도 또 다른 욕망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 욕망은 누군가를
짓밟거나 빼앗는 욕망이 아니다.
더 나은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의 형태를 지닌 욕망이었다.
* 요하를 통해 그들이 말하는
‘인간의 마음’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핏빛 바다가 아닌, 파도가 부서지는
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것.
안개처럼 뿌연 내 마음 위로도
조금 맑은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듯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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