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는 프랜시스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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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채 서포터즈 3기 자격으로 받아본 책이다.
'가라앉는 프랜시스.'
제목을 처음 마주했을 때, 도대체
무슨 뜻일까 한참을 골똘히 생각했다.
'프랜시스'라는 이름 자체는 익숙했지만,
제목 속에서 또 다른 의미가 숨어 있는 것 같아
쉽게 감을 잡을 수 없었다.

* 반투명한 표지 아래 숨겨져 있는 그림을
한없이 바라보다가, 결국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그대로 책을 펼쳤다.
이야기는 도쿄에서 살다 훗카이도의 작은 마을,
안치나이로 이사온 무요 게이코로부터 시작된다.

* 인구가 약 팔백 명 남짓한 이곳에서 게이코는
우편 배달 일을 하며 마을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천천히 스며든다.
글을 읽기 어려워하는 어르신들에게
편지를 대신 읽어주고, 사소한 부탁을
들어주면서 조금씩 마을의 색을
자신의 마음에 묻혀가던 어느 날,
그녀의 눈에 한 남자가 들어온다.

* 마을 끝자락, 강가로 완만히 내려가는
잔디밭 옆 단층집에 혼자사는 남자
데라토미노 가즈히코.
어느 날 소포를 배달하던 게이코에게 그는 묻는다.
"댁은 음악 좋아하세요?"
그리고 자신은 음을 제대로 듣기 위해 이곳에서
프랜시스와 함께 살고 있다고 고백한다.
이어 직접 그 음을 들어보지 않겠냐며
게이코를 주말에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 잘 알지 못하는 남자의 초대였지만
게이코는 그곳을 찾는다.
그리고 그동안 가즈히코가 수집해온
음들을 들으며 충격을 받는다.
늘 무심히 지나쳤던 소리들,
심지어 소음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그 순간 살아 움직이는 듯 느껴졌다.
그 생동하는 음을 경험한 게이코는 그 날
꽉 닫혀 있는 문을 하나 보게 된다.
그 문은 마치 '여기까지'라는 선을
그은 듯한 차가운 존재였다.

* 게이코는 문 너머를 향한 호기심을 억누르며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
그리고 일주일 후, 스스로 원하지 않았으나
거부할 수도 없는 힘에 이끌리듯
그 문을 넘어가게 된 게이코.
처음부터 나는 가즈히코의 질문 속에 깔린
'꼬심'을 어렴풋이 느꼈었다.
하지만 게이코가 이렇게 쉽게 그 문을
넘어갈 줄은 몰랐지.
농밀하고도 은밀한 어른의 연애 앞에서
나 역시 괜히 허둥지둥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밥을 먹고, 양치질을 하고,
같은 침대에 눕는 '연인'이 된다.
평안하면서도 어딘가 불안한 그 일상 속에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숨어 있었다.
작은 마을에서 보이지 않는 시선에 의해 떠도는 소문,
그리고 가즈히코를 향한 게이코의 불안이
그 틈을 더욱 벌린다.
그러면서도 그 사이에는 마치 음악처럼
아름답게 피어나는 사계절의 문장들이 있었다.

* 도쿄에서 온 게이코가 안치나이에 스며드는 과정,
그리고 처음에는 그저 각자의 형태에 불과했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스며드는 과정이
묘하게 겹쳐 보였다.
'똑똑똑! 계세요~' 하고
문을 살짝 두드리듯 조심스러운 접근이 아니라
'벌컥! 여어~ 나야!' 하는
갑작스러움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 변화야말로 작은 마을에서
살아가던 게이코에게는 커다란
울림을 준 듯하다.

* 평소 피와 살이 튀는 장르물을 주로
읽는 나로서는, 특히 첫 문장에 담긴
묘한 긴장감 때문에 처음에는
가즈히코를 연쇄살인마쯤으로 의심했다.
그러나 책을 덮을 즈음, 나는 마침내 그가
가진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제목의 의미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 그리고 그때 나는 문득 게이코가 밝고 환하게
웃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예고없이 그녀의 삶에 뛰어든 가즈히코,
그리고 그들과 함께한 프랜시스.
그들의 사계절과 풍경을 그려낸 서정적인 문장들은
마치 글자 사이에서 음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이 책은 소리를 '듣는' 경험이 아니라,
소리를 '읽는' 경험을 선물해 주었다.
사계절 내내, 어느 때이고
다시 펼쳐보고 싶게 하는 책이었다.

@drvi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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