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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평점 :

*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
'채손독'을 통해서 받아본 책이다.
클레어 키건 하면 아일랜드 소설가,
그리고 잔잔한 문장으로 큰 울림을 주는
작가님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맡겨진 소녀'의
작가로도 유명하다.
* 푸른 들판을 걷다는 클레어 키건의
초기 소설집으로 에지힐 단편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클레어 키건의 초기 문장은 어떨지
궁금해서 신청해 봤는데
결과적으로는 이 언니 천재다!
* 총 7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 책은
하나하나가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단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홀린 듯이 읽어버렸다.
* 특히, 소설 속 배경인 시골 풍경을
묘사할 때는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귓가에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눈 앞에 아일랜드의 들판과 나무들이
우뚝 서 있는 착각에 빠져들곤 했다.
음, 이쯤 되니 홀린거 맞을지도.
* 뛰어난 풍경 묘사와 더불어
가장 특색 있었던 것은 각 주인공들의
삶의 한 순간을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짧게는 아침에 일어나서 비행기를 타러 가는
그 몇 시간을 보여주기도 하고
길게는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
짐작할 수 있는 미래를 보여주기도 했다.
* 보여지는 삶의 순간이 짧다고 해서
느껴지는 바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짧은 순간에 툭 내뱉는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그들 삶을 더 잘 엿볼 수도 있었다.
* 이 한 순간에서도 가장 대비되는 것은
남자와 여자였다.
권위로 무장하지만 무능한 남자와
권위에 순응하지만 남자보다 능력 있는
여자의 대비되는 모습은 신선했다.
엄마의 묵인 아래서 아빠에게
아빠에게 성적 행위를 강요당하는
이야기를 볼 때는 너무 화가 났다.
* 그렇게 착취한 딸이 떠나가는 데도
침대에서 나와보지도 않고
돈 한 푼 쥐어주지 않는 무능함이란.
반면에 아픔을 딛고 일어선 여성도 있었다.
* 잊혀진 약속과 지나간 사랑,
그리고 잃어버린 아이로 고통스러워 했지만
이내 다시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는 여자.
이런 장면들이 아일랜드 특유의 신화와 합쳐져
더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다.
* 그 몽환적인 분위기에 휩쓸려서 읽다보니
어느새 책의 페이지 수는 점점 줄어들고
이야기가 끝나 간다는 것이 아쉽기만 했다.
더 읽고 싶은데.... 하면서 봤던 문장을
또 곱씹어 보게 되었다.
* 지극히 보편적이고 단순한 단어의
나열로 만들어진 문장이
이렇게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니.
이래서 다들 클레어 키건!! 하는 구만~
잔잔하고 평온한 문장들임에도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용돌이는
괜시리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 아일랜드 하면 제일 먼저 떠 오르는 것이
오로라였는데, 이제는 아일랜드 하면
클레어 키건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오래오래 곁에 두고 꼭꼭 씹어서
음미하고 싶게 만드는 문장들이 가득한 책.
안개 낀 고요한 들판 위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파란 평야 위에서
꼭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