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나이다 비나이다
신도윤 지음 / 한끼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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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끼 출판사에서 받아본 책이다.
감사하게도 먼저 제안을 주셨을 때,
내가 좋아하는 장르라서 고민없이 받았다.
태양을 움켜쥔 듯한 표지도 끌렸고.

* 사실 나에게 "비나이다 비나이다" 라는
주문은 전혀 생소한 것이 아니다.
불교를 모태신앙으로 하는 우리 집은
민속 신앙에도 믿음이 깊었다.
할머니의 부엌 찬장 한 구석에는
성주단지로 보이는 항아리가 늘 있었다.

* 어렸을 적부터 자주 아팠던 나는
열에 들떠 정신이 없던 와중에도
그 단지를 향해 두 손을 비비며
손녀의 건강을 비는 할머니의 모습을 자주 봤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이어 받아
엄마도 불경을 틀어놓고 내 머리맡에 앉아
밤을 세우며 이 주문을 외웠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우리 딸 건강하게 비나이다.'

* 그래서 나에게 이 주문은
나를 지키기 위한 어른들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이 책도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누군가의 마음이 깃들어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기분 좋은 느낌의 표지를 쓰다듬으며
책을 열어보았을 때,
이 주문이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 어렸을 적 화재로 인해 부모님과
하나뿐인 여동생을 잃고 고아가 된 최이준.
그는 보육원에서 자라며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늘 홀로였던 이준에게 도심은 외로움 그 자체였다.
그래서 숲이 있는 깊숙한 산골 마을로
발령을 받았을 때, 내심 안도했다.
작은 마을은 적어도 그에게 가족의 느낌을 줄 수 있으니까.

* 그렇게 한사람 마을로 향한 이준은
길을 헤매고 헤매이다 슈퍼 할머니에게
이상한 말을 듣게 된다.
'거기는 안가는 게 좋아.
가더라도 절대 내 이야기는 하지마.'
마을에 발도 들여놓지 않았는데 이 불길한 대답이란.

* 이준은 이런 말 따윈 깡그리 잊어버리고
결국 한사람 마을로 들어가게 된다.
마을 주변에 울타리가 처져있고
늘 한사람이 초소를 지키는 마을.
그리고 마을과 이질적이게 세련된 건물인 교회,
신에 대한 충성심이 깊은 마을 사람들.
나는 이 모든 것이 불안하게만 느껴졌다.

* 어느덧 주말이 되었을 때,
새빨간 액체가 들어있는 비닐 봉지를 들고
마을 사람들은 교회로 향한다.
이방인인 이준은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다.
하지만 이장이자 교회 목사의 허락으로
처음 예배에 참석한 날,
이준은 영광의 방에 갔다온 노인의 허리가
꼿꼿이 펴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 이것이 기적이라 부르는 신의 은총인가,
아니면 사이비에 의한 악마의 농간인가.
나는 적어도 배울만큼 배운 젊은이이기 때문에
이준이 훨씬 더 이성적으로 행동할 줄 알았다.
하지만 신을 영접한 이준은 병적으로
영접에 집작하게 된다.
그리고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소원을
마음 속으로 품게 되는데
이 과정을 독자로서 납득이 가게 만들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 한사람 마을에 들어가서 갑자기 눈이
돌아간 것이 아니라 그 앞에서부터
이준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내심 그를 응원하게 되고, 같이 불안해 하게 되었다.
제발 걸리지 마라, 조금 더 생각해서 행동해!
라고 했는데 신에게 바쳐지는 제물이
확인 되는 순간 불안은 더 고조되었다.

* 절대 무를 수 없는 소원과
어째서 그들이 이렇게 고립된 생활을 하는지
단 한번에 이해가 되었다.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어리석은 인간에게
신은 어떤 행동을 보여주는지 잘 보여준 책이었다.
오랜만에 잘 차려진 맛깔나는 오컬트 소설이랄까~
용두사미의 결말이 아니라서 더 즐거웠다.

* 가장 좋았던 점은 우리나라 고유의 민속신앙에만
기대지 않고 서양의 종교인 '교회'를 가지고 와
절묘하게 섞어놨다는 점이다.
파묘와 곤지암을 잇는 계보가 아닌 신도윤표
장르를 개척한 기분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파묘와 검은 사제들 사이정도?

*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체는 세련되어 보였고
이준에게 깊게 이입할 수 있었다.
적어도 한국에 이런 글을 쓰는 작가님과
책을 내주는 출판사가 있다는 것에 참 감사하게 되었다.
더불어 이 작가님의 행보를 계속 지켜보고 싶었다.
이렇게 좋아하는 오컬트 작가님이 한 분 더 생기는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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