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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녕가
이영희 지음 / 델피노 / 2024년 8월
평점 :

*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
'채손독'에서 받아본 책이다.
화녕의 노래 라는 뜻의 책은
표지를 보자마자 홀딱 반해버렸다.
화녕은 누구이며, 그녀의 노래는 어떠할까?
* 궁금증을 안은 채 펼쳐본 책은
알록달록한 표지와 다르게
암울한 시대의 이야기였다.
1930년대 후반,
일제강점기 그리고 대한제국 시절의 이야기이다.
* 롤모델은 윤심덕이요,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노래를 부르는 것인 화녕.
화녕은 늘 검은 옷을 입은 밤손님과
마작이나 하는 아버지가 못마땅했다.
그녀가 스스로 거리로 뛰어나가 독립운동을
할 수는 없지만, 진주에서 둘째 가는
친일파 아버지가 못마땅했던 것이다.
* 그럼 진주에서 첫째 친일파는 누구인가?
그것은 남초시 댁 순행이었다.
30살이나 어린 서씨 부인을 재취로 들이고
손자인 인서와 인예를 키우고 있었다.
* 남초시 댁에서 순행의 말은
나랏님 보다 무서웠다.
특히 서슬퍼런 서씨 부인의 눈초리를
인서는 견디기 어려웠다.
행랑 아범과 무명댁이 고초를 겪는 것을
더 이상 보기 싫어 서씨 부인과
다시는 행랑채에도, 창 가락에도
가지 않는다고 약조를 한다.
* 그리고 얼마 뒤,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인서의 귀에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가슴속에 무엇인가 일렁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서씨 부인의 덫임을 알고 있는 인서는
그 아이의 면전에서 독한 말을 내뱉는다.
옥보다 고운 목소리를 지닌 화녕에게.
*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
화녕에게 남은 것은 노래 할 수 있는 목소리와
엄마 같은 유모 채단 뿐이었다.
늘 화녕의 옆에 있을 것 같았던 아버지도,
화녕의 취미였던 레코드 판들도,
그 레코드를 들을 수 있었던 집도 없어졌다.
* 그리고 참말 오랜만에 그를 만났다.
남초시 댁 도련님 인서를.
인서는 어릴 적 자신이 뱉은 말에
사죄라도 되는 양 늘 화녕을 위해 애썼다.
'화냥년' 이라고 상대도 안해주는
상인들과 주변의 멸시를 나서서 막아주고,
채단의 휠체어를 사는데 꼭 필요했던
돈을 벌 수 있게 해준다.
* 그런 인서 옆에 꼭 붙어있는 한 남자.
현성이다. 일본인이기 때문에 성은 없다.
대신 그에게는 진주 헌병대장 아들이라는
지위가 있었다. 물론 집에서는 늘
아버지와 싸우지만.
* 화녕은 그 현성의 집에 매주
노래를 부르러 간다.
화녕이 어째서 그리 홀로 되었는지,
왜 그의 집에서 노래를 부르는지 잘 아는
현성은 죄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어릴 적 무지개 왕사탕이었던
인예를 버리고 인서 앞에 맹세한다.
무슨일이 있어도 인서와 화녕만은 지키겠노라고.
* 책을 읽는 내내 먹먹함에 목이 메었다.
어느 누구 하나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었다.
아, 유일하게 찾자면 진주 헌병대장 정도?
그 아픈 시대에 아픈 인연을 맺은 네 사람.
* 그 시절에 청춘은 나라에 바치고
나보다 약한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았던 사람들.
그게 인서와 화녕이었다.
인서는 화녕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여느 도련님들처럼 평안하게 살 수 있었을까?
화녕은 인서를 만나지 않았다면,
비참하게나마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여느 여인처럼 살 수 있었을까?
그래도 그들은 서로 만나 알아보았기에
행복한 삶은 아니었을까?
* 온갖 질문들만 머리에 맴돌았다.
어떻게 보면 차라리 만나지 않는 것이 좋았을 그들.
그리고 일본인이지만 우정과 맹세를
져버리지 않았던 현성까지.
잘못된 시대를 타고 난 그들이 너무 안타까웠다.
* 화녕의 '화'는 꽃이 아니라 불꽃이란다.
고운 목소리로 곱디고운 노래만
부르며 살 줄 알았는데,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한을 토해낸 그녀,
인서의 불꽃인 화녕의 이야기는
슬프면서도 눈이 부셨다.
* 악역이었던 서씨 부인도,
그녀의 축소판 같은 인예도 처음에는
너무 미웠는데 속사정을 알고 나서도
밉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사람이 그러면 안돼지!!!
* 화녕의 목소리를 나름 상상하면서,
아는 노래들을 속으로 따라 부르며 읽었던 책.
아주 오래도록 내 마음에 깊이 남을 책이 되었다.
화녕, 인서의 불꽃.
지금은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껏 부르면서
인서 옆에서 행복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