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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캐런 제닝스 지음, 권경희 옮김 / 비채 / 2024년 8월
평점 :

* 비채 서포터즈 자격으로 받아본 책이다.
2021년 부커상에 노미네이트 된 작품이라고 한다.
표지를 보니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고요'였다.
*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
그 파도가 모래 알갱이를 밀고 당기는 소리,
가끔 날아드는 새들의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것만 같은
섬의 모습.
그리고 외로이 불을 밝히고 있는 등대 하나.
잔잔한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막상 펼쳐본 책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 외딴 섬에서 등대지기를 하는 새뮤얼.
그는 스스로 섬을 가꾸고, 일구었다.
닭을 키우고 채소를 경작하며
자급자족의 삶을 사는 새뮤얼은
가끔 늘 그렇듯이 파도가 밀고 온
쓰레기들과 마주했다.
* 빗물받이로 쓰기에 딱 좋은 드럼통과
그 옆에 누운 거대한 남자의 시신.
파도는 쓰레기 뿐만 아니라 이렇게
죽은 사람들도 데리고 왔다.
새뮤얼은 시신을 처리하기 위해
그를 툭 건드려 보았다.
그때, 그 남자는 작은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 그렇다.
그는 살아있었다.
* 나이가 많은 새뮤얼이 그를
오두막까지 옮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컸고, 무거웠으며 새뮤얼은 너무 늙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를 오두막까지 옮긴 새뮤얼.
그때부터 언어도 통하지 않는 그와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됐다.
* 새뮤얼은 자신의 섬에 이방인이
들어온 것이 썩 달갑지 않았다.
그는 혼자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었다.
과거, 새뮤얼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고
감옥에서도 혼자였다.
그 기나긴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고 나온
새뮤얼에게 세상은 적응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 그런 그가 등대지기로 살며 혼자의 삶과
고독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그는 그 이방인을 자신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단단한 오해를 쌓아갔다.
의식을 잃은 그를 발견하면서 부터 단 4일.
*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속에
독자는 새뮤얼의 과거를 볼 수 있었다.
그의 어린 시절 아빠와 엄마, 동생과 함께
가난한 그 시절을.
더불어 당시의 식민지와 독재자 시절을 볼 수 있었다.
* 새뮤얼에게 치유는 없었다.
그는 끊임없이 상처 받았고
그 상처 속을 허우적대며 살았다.
등대를 지키는 지금까지도.
감옥에서는 새뮤얼에게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았고 하나뿐인 아들을
볼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 아들의 죽음을 전해들었을 때,
새뮤얼의 심정은 어땠을까.
* 살다보면 이렇게까지 일이 안풀리고
상황이 안좋아질 수 있나, 싶을 때가 있다.
적어도 내가 본 새뮤얼의 모습은 그랬다.
작은 행복도 잠시 뿐이었고,
그의 삶은 늘 고독과 상처로 가득찼다.
* 나는 낯선 이방인을 통해 새뮤얼이
다시 정을 느끼고 세상 밖으로 나가길 원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섬 밖이 무섭다면
적어도 그 이방인과 부자처럼 지내길 바랐다.
아, 새뮤얼.
그의 고독은 결코 치유될 수 없는 것이었나.
* 책은 그리 길지 않았고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결코 내 마음까지 편치는 않았다.
스스로를 섬에 가둔 그.
새뮤얼은 이제 안정을 찾았을까.
아니면 아직도 타는 냄새의 공포 속에 갇혀
섬을 일구고 있을까?
어떤 쪽도 편치 않은 결말일 것 같다.
어쩌면 새뮤얼은 자신의 안식처를
이방인과 나눌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 예고없이 들이닥친 이방인.
'난민'이라는 이름으로 곳곳에 흩어진
그 이방인들의 삶도 너무 안타까웠다.
나라가 나를 지켜주지 못할 때,
나는 스스로도 나를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처음 읽는 아프리카 문학이 참 씁쓸해서
오늘은 밝은 태양이 슬프게만 보였다.
새뮤얼, 어찌됐든 만수무강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