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들 - seasters 네오픽션 ON시리즈 14
채헌 지음 / 네오픽션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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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제주도 해녀이우다.'
이 말만큼 자신의 태생과 소속을 정확히
나타내는 말이 또 있나 싶다.
또 이렇게 아릿한 말이 있을까 싶다.

* 이 책은 1900년대에 일어난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이며 일제강점기 전국에서 유일한
여성 주도의 항일 운동인
제주 해녀 항일 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역사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한 가상의 이야기.
나는 그렇게 그들을 만났다.

*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 부터 지었던 땅을
문서 하나 안냈다고 홀랑 뺏어간 일본인들은
지주가 되었고, 내 땅이었던 땅을 소작으로
부치는 서러운 날들의 연속인 날.
그래도 물때는 어김없이 찾아왔고 서복은
물때에 맞춰 물질을 하러 나섰다.

​* 제주도 월영마을의 요망한 애기상군이던 서복.
그녀는 대상군인 두실의 밑에서
상군으로 있는 해녀이다.
늘 그랬듯이 바다를 보고 두실을 따라 들어간 바당(바다).
그 안에서 테왁 가득 전복이며, 소라며, 우묵이며 따오지만
조합에서 받는 돈은 갈치꼬리만 하다.

* 개삼동이라고 불리는 조합 서기보가
저울을 볼 줄도,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해녀들의
물품을 싼 값에 후려쳤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제 값을 받기 위해 일본 숫자를 배우고
저울 보는 법을 익히지만 조합은 어느새
시세를 낮춰 나아지는 기미가 없었다.

​* 고심 끝에 그녀들은 넉실의 말에 용기를 내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적어
개삼동에게 주지만 묵과해 버리는 삼동.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요구서를 들고
직접 조합으로 찾아가기로 한다.


* 가는 길에 사람들에게 보여질 현수막과
팻말도 만든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림도 그린다.
모든 준비를 마친 그녀들은 결전의 날만 기다리고 있다.
이름마저 깍쟁이 같은 깍지를 개삼동이가
조용히 구슬리고 있는 것도 모른 채........

​* 책을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아팠다.
'섬'이라는 고립된 공간에 일본인들이 판을 치는 세상.
그리고 그 속에 남은 여인들.
이들이 바라는 건 거창한게 아니었다.

​* 그저 자신들이 목숨 걸고 물질 해온 물품들이
제값을 받기를.
내 뒤에 해녀가 될 딸들은 이렇게 살지 않길
바라는 마음 뿐이었다.
어찌 그녀들이라고 겁이 안났을까.
후들거리는 두 손발을 어르고 달래며
함께 나섰던 길이었다.

​* 일본인보다 더 지독하게 그들을 짓밟고
뼛속까지 빼먹은 이는 친일파. 같은 조선인들이었다.
진짜 읽으면서 개삼동이랑 승일이는
빗창으로 조근조근 저며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제주도는 물론이고 우도 해녀들까지 참가한 시위.
빗창을 높이 치켜들고 구호를 외치는 그녀들을 보면서
나는 또 눈물, 콧물을 질질 짜냈다.
그들이 지켜준 바다에서, 그들이 얻어다 준 해산물을 먹고
자란 이의 고마움과 미안함의 눈물들이었다.




* 옆에서 가만히 바라보던 남편이 물었다.
마음이 힘들면, 그만 읽어도 되지 않냐고,
처음부터 선택하지 않으면 되는 책이 아니냐고.
남편의 질문에 나는 곰곰히 생각하고 대답했다.

​* 내가 읽지 않으면 이 시대의 여성들과
그 안에서 고통받던 조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무도 써주지 않을까봐 겁이 난다고.
그렇게 아무도 읽지 않고, 써주지 않아서
그들이 기억에서 지워질까봐 나는 무섭다고.

​* 그 당시 여성들의 이름은 아무도 기록해주지 않았다고.
그래서 나는 이렇게라도 그녀들을 만나고
조국의 광복을 빌며 스러져간
그들의 이름을 이렇게라도 기억하고 싶다고 말이다.




* 나는 그렇게 그들을 만났다.
바다에서 욕심부리지 않고, 바다가 준 만큼만
얻어오는 해녀들의 모습을,
다음 세대는 조금 더 잘 살길 바라는
그녀들의 마음과 이름을, 이렇게 기억하게 됐다.

​* 아주 슬펐던 이야기만 있었던 책은 아니다.
반짝이는 바다와 불테에 앉아서 두런두런 나누는
농담들까지 포근하고 따뜻한 이야기도 있다.
불테에 같이 앉아서 군고구마 까먹으면서
같이 수다 떨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 제주 사투리를 그대로 사용해서 훨씬 더 실감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이 빗창을 들고 싸우는 모습이
더 깊게 뇌리에 박혔는지도 모르겠다.


* 요즘 제주 해녀는 고령화로 인해서

그 명맥이 끊어질 위기라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

요즘은 원전 오염수로 인해 그들의 걱정이

더 해졌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당장에 내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해 봐야겠다.

* 바람이 있다면 그저 부디 오래오래

요왕할망의 보은을 받아 제주 해녀분들이

반짝이는 제주 앞바다를 마음껏 누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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