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를 위하여
루이 알튀세르 지음, 서관모 옮김 / 후마니타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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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저작은 공자의 말처럼 후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주석을 붙여놓았는데, 어떤 주석은 지금까지 생명력을 가지고 마르크스의 이론을 적확하게 보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루이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저작의 핵심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철학자 중 한명이다. 그의 해석이 지금까지 생명력을 가지는 이유는 그가 마르크스 이론을 단순히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르크스를 기반으로 확장한 이론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알튀세르가 마르크스를 해석하기 위해 빌려와 전유한 개념은 인식론적 절단’(혹은 인식론적 단절)과잉결정이다.

 

인식론적 절단은 과거의 이론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생각들을 동반한 새로운 개념과 이론의 정립이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청년기 저작 속에서 그가 후기에 보여주었던 전혀 다른 개념들을 살펴보고 기존에 지배적이었던 마르크스에 대한 해석을 비판하는 작업을 한다. ‘인식론적 절단은 단순히 이전의 이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현상을 해석하거나 이론을 재조직하는 작업이 아니라, 대지의 양분을 받아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듯 기존의 이론을 바탕으로 해서 전혀 다른 이론적 지평을 여는 작업이다.

 

과잉결정은 마르크스의 모순에 관한 이론을 해석하는 주요한 틀로써 자본주의 시스템에 있는 주요한 모순들의 관계를 다루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다. 알튀세르는 우리가 마르크스의 모순 개념을 통해 여러 혁명들과 현상들을 해석하고 있는데, 이 해석이 단일한 모순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환상을 폐기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과잉결정에 대해 논의하는데, 어떠한 사건과 현상, 그리고 마르크스의 모순에 관한 설명은 어떠한 단일한 힘의 작용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맥락과 역사들 그리고 미시적인 사건들의 총합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이 두 개념을 중심으로 마르크스의 저작을 분석하고 그의 저작들을 오독하고 있던 기존의 해석에 대해 치밀한 반박을 제시한다. 책 속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청년 마르크스에 대하여라는 첫 장의 내용이다. 마르크스가 후반기의 작업들을 이루어내기 위해 수용하면서 동시에 뛰어넘어야 했던 이론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헤겔과 포이허바흐의 사상들이 그것인데, 마르크스는 이들이 제기하는 세계와 인식에 대한 질문 자체를 바꾸면서 자신의 이론을 만든다. 다시 말해, 질문 자체 질문을 던지는 방식인데, 알튀세르는 이 작업을 마르크스가 자기 자신의 문제설정을 가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마르크스를 위하여>를 개인적으로 즐겁게 읽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질문은 대답을 구성한다. 질문을 하는 방식은 언제나 수많은 답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 답을 제외한 세계에 대해서는 보여주지 못한다. 가령 우리가 밥은 먹었어?’라고 물어 본다면 음식의 다양한 종류에 대한 무수한 답을 가지고 있지만, 밥을 먹었는지 아닌지에 관한 대답 이외의 세계에 대해서는 볼 수 없다. 알튀세르는 이 지점을 적확하게 포착했다. 질문의 방식의 바뀌면 대답의 방식이 바뀔 것이다. 알튀세르가 수행한 마르크스에 대한 분석을 통해 현대의 사회와 지극히 개인적 일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혹은 저들은 왜 이런 질문을 하는가, 하고 말이다.

 

* 마르크스의 직접 저작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마르크스의 핵심 이론에 대한 지식과 사회·역사적 맥락을 알고 있다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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