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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독스 1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2년 10월
평점 :
"그 소수의 사람으로는 살아가기 힘들어요. 머지않아 모두 죽을 거예요.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건 어느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은 언젠가는 죽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느냐가 아닐까요.
삶의 의미를 깨달으려면 그저 열심히 살아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p.530>
일본 시간으로 3월 13일 오후 1시 13분 13초.
블랙홀의 영향으로 엄청나게 거대한 에너지파가 지구를 덮치고, 그 결과 시공간의 뒤틀림에 의해 13초간의 공백, 이른바 'P-13'현상이 발생한다는 얘길 듣게 된다.
일본 뿐만이 아닌, 지구 전체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란 소리를 듣게 되면서 혼란에 빠지게 되지만 정부는 사회 혼란을 우려해 이 사실을 공표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한편, 범인 체포 작전에 나섰던 경시청 관리관 '세이야'는 13시 정각부터 13시 20분까지. 정확히는 1시 13분 전후로는 위험한 행동은 삼가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게 되지만 동생이자 관할 서 말단 형사인 '후유키'의 의욕이 앞선 무모한 행동 때문에 범인으로부터 총격을 당해 쓰러지고, 후유키 역시 범인의 총에 맞아 정신을 잃는다. 잠시 후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후유키는 주변을 둘러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 어디에도 사람이라고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곳에 홀로 남겨진 후유키. 거리 구석구석 살피다 마침내 사람으로 보이는 작은 물체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딸 미오와 그녀의 엄마 에미코. 거리에 그려진 커다란 화살표를 따라간 초밥집에서는 신도 다이치라는 청년을 만나게 된다. 그 후 우연찮게 라디오 방송을 통해 생존자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그곳에서 형 세이야를 포함한 생존자(여고생 아스카, 노부부(야미니시 시게오와 야마니시 하루코), 대기업 건설회사에 다니고 있는 기술자인 고미네와 같은 회사 전무 도다 마사카쓰,병원 간호사인 도미타 나나미, 갓난아기 유토까지)와 만난 후유키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자신들만 남아서 이런 고통을 당하는지 고민해보지만 답은 나오지 않는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하기보다 순간적인 판단력은 물론 항상 냉정하고 행동력있는 형 세이야의 의견을 좇아 매일 닥쳐오는 재난(지진과 홍수)속에서 살아남으려 고군분투하기 시작하는데 ~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참 간만에 읽는 것 같다. 한때 이분의 책이라면 고민없이 무조건 사읽었는데 임신과 출산으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느라 못읽고 지나친 작품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해 안습 ㅡ.ㅜ
긴 호흡을 갖고 한꺼번에 읽어내려가야 끊김이 없어 이해도 빠르고 재밌기에 소설은 무조건 그렇게 읽는 편인데 아기 재우고, 기저귀 갈고, 분유 먹이느라 잠깐잠깐 읽을 수 밖에 없는지라 한동안 소설이 참 부담됐는데 요즘은 그나마 좀 괜찮은 편. 그만큼 애키우는데 조금은 익숙해졌다는 소릴까? 그렇게 조금씩 짬내서 책읽기를 시도하고 있는데도 이 책 분량이 570여페이지가 넘는지라 포기할까 고민을 많이 하게 되더라는. 그럼에도 집어든것은 재밌다는 입소문때문 ㅎㅎㅎ
조금만 읽고 자야지 했는데 뒷 이야기가 궁금해 조금만, 조금만 하다가~ 하룻밤을 꼴딱 새고 말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답게 쉽고 재밌게, 그러면서도 진지한 생각도 하게 만드는 것이 다 읽고나니 뿌듯하더라.
생존이 최우선이었지만 전원이 생존할 수 없다면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렇다고 무조건 목숨만 보존하기만 하면 되는 것도 아니기에 한사람 한사람의 가치관이나 프라이드를 무시해서도 안되는 상황. 그런 참혹함 속에서도 개인과 집단의 이해가 부딪히고 각자의 욕망이 뒤섞인다.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윤리인지,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간 곳에서는 선악의 구별은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책을 읽는 독자에게 묻는 작가. 살아남으면 언젠가는 살길이 열린다는 말이 맞는걸까 ???
치밀한 구성과 속도감 있는 전개, 생생한 묘사에 눈을 뗄 수 없었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은 얼토당토 않는 사건을 툭 던져놓고 당췌 어떻게 결론 지을려고 그러나 ~
작가가 그린 결말은 어떤걸까~ 그게 젤로 궁금해 중간에 책을 접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단 조금 시시한 결말이긴 했지만 그것말곤 딱히 색다른 결말도 없었을 듯 싶기도 하다;;
수많은 재난영화의 결말이 그렇듯~~~
(주인공의 가족애를 회복하거나 확인하고, 망할꺼라 생각했던 인류에겐 언제나 희망이 보인다 ㅎㅎ)
2012년 종말론으로 시끄러운 시점에 읽은 책이라 그런지 생각이 많아졌다.
책 초반 '지구의 보복'에 이런저런 얘길 나누는 부분이 있는데 (인류는 환경 파괴에 혈안이 된 존재로, 지구를 원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되돌리려면 인간이 사라지는 수밖에 없다고.
하나의 행성을 지키기 위해 우선은 천적인 인간을 소멸시키고, 이어 인간이 구축한 문명을 파괴하는 것. 지진이나 홍수 역시 지구가 모든 것을 백지화하려는 수순의 하나라는 이야기)
종말론을 믿는 건 아니지만 요즘처럼 전세계적으로 이상기후가 벌어지는 걸 보면 어떤 식이건 지구의 종말은 상상치 못한 모습으로 우리 눈앞에 벌어지지 않을까 싶어 불안해진다.
재밌게 읽어놓곤 조금은 뻔한 이야기였다고 마무리 짓게 되어 민망하지만 그럼에도 위의 이유들 때문에 그의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고 빨리 만나보고 싶다 말할 정도로 난 히가시노 게이고가 좋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