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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보트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11월
평점 :

희망이란 미래에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는 무엇이다, 아마도. <p.232>
작가의 말을 통해 - 소소하고 조용한 이야기지만 광기(狂氣)에 대한 이야기 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쓴 소설 중에서 가장 위험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말한 그녀.
책을 다 읽은 지금 왜 가장 위험한 작품이라고 한지는 모르겠지만 달콤하고 치명적인 사랑의 열병에 대한 이야기만은 확실하단걸 깨닫는다.
인디언말로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인 11월이라 아빠만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가는 엄마의 진한 그리움, 쓸쓸함이 한없이 더 와닿았던 내용이 아니었다 싶다.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떠난 남자를 기다리며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모녀. 언제까지 떠돌아다녀야 하는지 모른채 아빠를 기다리는 걸 멈출 수 없는 엄마와 딸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어느정도 읽다보면 아빠란 사람에 대해 자세히 나오겠지 싶었는데 은근 아빠의 존재는 희미하기만 하다.
생선으로 비유하자만 앞뒤 다 잘라내고 몸통만 먹는 느낌 ?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시간은 흐르고 소우코가 자라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으니 신기할 따름.
첨부터 아빠란 존재가 없이 이야기가 시작되었어도 아무런 문제 없었을 것 같은 ~
천연덕스러울 정도로 능숙하게 이야기를 잘 끌어 나가는 에쿠니 가오리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싶다.
사랑의 광기에 사로잡힌 엄마와 그런 엄마 곁에서 성장해가는 딸 '소우코'
아빠를 만나기 전까지 떠돌이 나그네 일 수 밖에 없는 모녀.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사는것도 재미없고 살아 있어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왜 더 살아야 하는지 통 알 수 없었던 엄마에게 아빠와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고 할 수 밖에 없을 듯 싶다. 그 옛날 뼈마디까지 녹아버릴 듯한 사랑을 했고 그 결과로 소우코가 태어났다. 세번째 보물인 그녀.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엄마. 그만큼 아빠에 관해서만큼은 완전히 정신이 나갔다고 말할수밖에 없는 엄마. 아빠는 엄마 삶의 버팀목이고 엄마가 사는 이유, 그리고 소우코는 엄마의 기쁨이며 보물.
그런 엄마이기에 새로운 동네에 올때마다 악기점이 눈에 띌 때마다 기웃거리고 혹시나 모를 메시지를 찾아 <플레이어>, <기타 매거진>, <재즈 라이프>같은 잡지를 서서 훌어보곤 하는 엄마가 이해가 된다. 아니 오히려 격려하게 되는건지도 모르겠다.
아빠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엄마의 삶도, 어렸을때는 정말 아빠를 만날수 있을 거라고, 아빠는 우리를 찾고 있고,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내줄 거라고 믿었지만 점점 현실과 동떨어진 삶이 견디기 버거운 소우코가 엄마 곁을 떠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나가는 모습 또한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럽게만 보이니 누구 한사람만 응원할 수 없는 나도 큰일이다 ;;;
그 사람이 없는 세계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만난 후의 세계라 괜찮다는 엄마. 소우코란 존재가 엄마를 지상에 묶어둘 수 있는 유일하지만 든든한 존재가 될 줄 알았는데 ~
결말이 그러해서 조금은 안타깝다. 어느곳에서건 따스한 그 손 놓치 않기를 ~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난 그 사람이 돌아온 것이 아니라 엄마가 죽음을 선택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떠나지도 않거니와 녹아들지도 않는다. 그것은 나쁜 일은 아니지만 때로 주위 사람들을 고독하게 만들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알 게 되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으로 보여질 수 있겠지 ?조심해야지 ~
- 한 번 지나간 일은 절대 변하지 않잖아. 언제나 거기에 있어. 지나간 일만이 확실하게 우리 거야. <p.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