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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향기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7월
평점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2/0807/pimg_754104126780058.jpg)
불가사의한 여름이었다. 사소한 일을 유독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p.64>
제목도 표지도 너무 로맨틱한 에쿠니 가오리의 신간 <수박향기>
이제까지 읽어왔던 일상적이면서도 서정적인 느낌이 듬뿍 담긴 에쿠니 가오리만의 스타일로 써내려간 이야기 같지만 막상 읽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 놀랄지도 모르겠다.
비교적 얇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수박 향기>,<후키코 씨>,<물의 고리>,<바닷가 마을>,<남동생>,<호랑나비>,<소각로>,<재미빵>,<장미 아치>,<하루카>,<그림자>등 11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책. 주인공들은 모두 소녀고 모든 단편은 어린 소녀들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비밀 같은 이야기를 차분히 풀어내는데 있다.
열한 명 소녀들의 차갑고 애처로운 비밀 이야기. 생각외로 잔인한 표현이 많다.
어떻게든 거북의 알몸, 그러니까 등딱지를 벗은 거북의 모습을 보고 싶어 결국 부엌칼로 배에 좍 금을 그어 어이없게도 죽게 만들었다는 후키코씨의 이야기가 그러했고, 벽돌담 지름이 오밀리미터 정도 되는 달팽이를 하나씩 떼어내 땅에 내던지고는 장화 밑바닥으로 아작 뭉개지는 가볍고 상쾌한 감촉을 즐겼던 물의 고리속 소녀, 다다미위에 반듯하게 누워 고옷 하고 외치며 죽은 사람을 덮어씌우듯 이불째 쓰러지며 즐겼던 장례식 놀이에 대해 꽤나 길게 설명한 남동생편이 그러했다.
아홉살 여름방학, 그림자 극을 순회공연하는 단체, 자원봉사하는 대학생들이 찾아왔고 헤어지는날 주머니에서 면도칼을 꺼내 그의 왼 손바닥을 그은 소녀. 헤어짐이 아쉬워 했다는 행동치곤 좀 과한게 아닌가 싶은데도 어쩐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
소녀라는 이미지가 주는 느낌이랄까 ? 순수함과 잔혹함을 동시에 느꼈을때의 그 기분을 에쿠니 가오리가 너무나도 잘 표현한 듯 싶다.
절망과 한심함, 이유를 알 수 없는 상실감과 슬픔에 빠질법도 한데도 희안하게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읽을때 그랬듯 일상적으로, 서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아~ 역시 에쿠니 가오리구나 싶은 감탄을 하게 만들었으니 신기하지 않을수가 없다.
사소한 것들을 특별함으로 치장하기도 하지만, 특별함을 사소함으로 아무렇지 않게 탈바꿈 시키는 데에도 선수인 그녀 !!!
갠적으로 <장미 아치>라는 단편이 젤 공감가더라.
기관지와 피부가 안좋아 건강을 위해 해마다 여름방학이면 신칸센을 타고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갔고, 매일 아침 아빠와 바다에 가 해수욕을 해야만 했던 소녀. 그 바닷가에서 만난 또래 아이에게 도쿄에 대해, 도쿄의 초등학교, 자신의 학교생활에 대해 거짓말만 늘어놓는 소녀의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담담하게 진행되는 이야기에 오히려 다른 곳에서 느끼지 못했던 큰 슬픔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
어딘가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은 어른뿐만이 아니구나~ 라는걸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모두들 자신의 자리에서 참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구나 싶은 ~
억지 결말로 꾸미지 않아 더 맘에 들었던 이야기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송글송글 흐르는 무더운 여름, 밤이 되어도 식을줄 모르는 열대야를 에쿠니 가오리만의 스타일로 꾸며진 미스터리한 이야기로 식혀보는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