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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관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2/0716/pimg_754104126775045.jpg)
"무슨 일을 하든지 일단 굳은 믿음이 중요하지. 어차피 세상의 거의 모든 일에는 정답 같은 게 없거든.
재미있다든가 올바르다는 식으로 뭐든지 굳게 믿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P.75>
어느날부터 매일같이 듣게 되는 학교폭력의 피해사례들.
미치오 슈스케의 신간 <물의 관> 역시 '달과 게'에 이은 가슴 아픈 성장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일까~ 표지부터 가슴이 목메는 아픔이 느껴진다.
맑은 날도 아닌 비오는 날에 이 책을 읽고 있으려니 아쓰코나 이쿠 할머니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져 우울함이 땅을 뚫고 들어갈 정도였다는 ㅠ
평범한 가정, 평범한 성적, 평범한 외모를 가진 '이쓰오'는 자신이 '평범함의 막'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답답해하고 괴로워한다.
반면 부모의 이혼과 엄마의 무관심, 그리고 전학 온 이후 친구들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겪으며 오직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아쓰코'.
학교 문화제 행사로 '유령의 집'을 준비하던 중 아쓰코는 이쓰오에게 초등학교 졸업 행사로 묻은 타임캡슐에 넣어둔 '20년 후의 나에게 쓰는 편지'를 바꿔치기하는 것을 도와달라 말한다. 전학온 이후 내내 왕따를 당한 아쓰코는 타임캡슐에 넣은 편지에 나에게 쓰는 편지가 아닌 자신을 괴롭힌 반 아이들 모두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고 20년 후 자신이 없는 상황에서 모두가 이 편지를 읽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모두에게 복수하는 맘으로 썼지만 어느날부터 거짓말처럼 친구들의 괴롭힘은 멈추고 아쓰코는 과거의 일을 잊기 위한 평범한 내용의 편지로 바꾸고자 한다. 이쓰오 역시 아쓰코의 평범한 삶을 위해, 그리고 스스로의 평범한 일상을 탈출하기 위해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 . .
반 아이들의 괴롭힘이 느닷없이 멈췄을 때, 아쓰코의 마음을 덮친 더 큰 공포를 표현하기 위한 표현으로 아쓰코는 아버지의 대학생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손전등을 들고 밤바다를 수영하던 그 때의 이야기를 . . .
'보이지 않는 캄캄한 곳에 뭔가 있는 게 아닌가 싶었지. 하지만 그쪽에 손전등을 비추면 그때까지 보이던 곳이 캄캄해지잖아.
그러면 이번에는 그쪽에 괴물이 있을 것만 같은 거야. 불을 켜지 전에는 자신이 캄캄한 곳에 있는 줄도 몰랐으면서, 일단 알고 나니 무섭더라고. 정말로 무서웠어" <P.58>
너무나 적절한 표현에 소름이 돋았던 ~
이런 섬세한 표현은 정말 미치오 슈스케가 아니면 힘들듯 ~~
모두에게 복수하려고 썼지만 이제는 잊고, 아무 짓도 당하지 않았다고 믿으려 해도 타임캡슐 속에 진신을 쓴 편지가 있는 한 아무 소용 없다며 평범한 이야기를 잔뜩 적어뒀다 말하는 아쓰코. 아버지가 없고 돈도 별로 없지만 밝고 즐거운 집, 잘 웃는 돌쟁이 여동생, 어머니와 마주 앉아 평범한 이야기를 하는 밤. 동경하고 또 동경하지만 자신은 절대 손에 넣을 수 없다고 체념할 때마다 다시 동경하고 마는 모든 '평범함'. 그 평범함 속에서 자신의 뜻에 따라 죽기로 결심하는 아쓰코지만 모두 함께 사이좋게 평범하고 즐거운 생활을 했다고, 자신이 만든 추억 속에서 살아가기로 했다며 이쓰오에게는 거짓말 하는 아쓰코.
공감하진 못했지만 아쓰코의 그 거짓말이 실혔됐으면 좋겠다, 진짜였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된 이쓰오.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타임캡슐의 편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기 위해 바꾼다. 그렇게 믿고 싶었던 이쓰오.
과연 아쓰코와 이쓰오의 '동상이몽' 같은 바램은 이루어질까 ? 과연 그들의 선택은 ???
세상 모든 것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그 중에 더 알고 싶은 이야기는 수없이 많지만 우리가 그 속사정을 자세히 알 방법은 없다.
뉴스나 신문에 오르내리는 이야기 외엔 왜 그런일들이 벌어졌는지 알길이 없기 때문에 그 속사정이 더 궁금한 이야기들 !!
헤드라인 기사만 읽고 만 듯한 찜찜한 기분을 조금이라도 해결해주는 프로가 시사프로그램인데 요즘 갠적으로 즐겨보고 있는 프로그램은 금요일 저녁에 하는 [궁금한 이야기 Y]다.
이 프로그램 역시 시청률을 의식한 화제성 짙은(?) 사건들만 펼쳐놓는 듯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어찌됐든 평소 궁금했지만 알지 못했던 간질간질한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느낌이 되어 자꾸만 보게 되는데 지난주 방송분에 영주 자살 중학생 이모군에 대한 어머니의 못다한 이야기가 방송되었다.
그러면서 신문기사론 접해보지 못했던 또다른 내용에 대한 사실들을 알게 되었고 타인인 나에게도 절절한 그 아픔이 부모에겐 얼마나 슬프고 원통할 일이 됐을지 상상하기도 힘들정도다.
그 아픔이 잊혀지기도 전에 읽은 이 책 미치오 슈스케의 물의 관. 이 책이 나를 다시 한번 흔들어 놓았다.
<궁금한 이야기 Y>라는 프로그램처럼 <물의관> 역시 내가 타인이 아닌 왕따를 당하는 아이가 되어, 그런 아이를 지켜보는 친구가 되어 그 아픔을 함께 느껴보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도롱이 벌레는 . . .사람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가끔 한단다."
"사람하고 비슷하다고요?"
"도롱이를 보고 모두 도롱이벌레라고 부르지 않느냐. 네 동생뿐만 아니라 어른도 그렇지.
도롱이를 보면 모두 도롱이벌레라고 불러. 실은 안에 든 까만 애벌레가 도롱이벌레인데."
"그게 왜 사람이랑 닮았다는 건가요?"
"그도 그런 게, 사람도 모두 밖에 나와 있는 부분만 보지 않니.
진짜 알맹이는 보지도 않고 밖으로 드러난 것만 보고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고 믿어버리지."
"아아 . . ."
"색종이랑 털실로 꾸며놓으면 모두 예쁜 도롱이벌레라고 말하지만, 알맹이는 똑같아. 그냥 까만 애벌레 그대로야." <p.323~324>
더 이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없는 아이들. 먼저 간 자식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가야 할 부모들에 대한 이야기.
이런저런 현실을 탓하기전에 앞서 아이들을 그런 막다른 곳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 모두 생각해보고 반성해야 할 것 같다.
아이들 역시 목숨을 버리기 전 부모와 조금이라도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건 어떨까 ? 목숨이 아닌 학교를 버리는 걸 선택하는건 어떨지 ~
죽는건 무섭고 싫으니까. 살고 싶으니까 ~ 아쓰코처럼 누군가가 알아줬으면 하는 간절한 그 마음.
나 역시 그 마음을 쉽게 지나치고 방관하고 있는건 아닐까 생각하면 무섭고 슬픈데 겉모습이 아닌 마음으로 사람을 보고 쓰다듬을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기가 아무리 원해도, 아무한테도 알려주지 않으면 절대 받을 수 없는 법이지" <P.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