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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론 투게더 Alone Together
혼다 다카요시 지음, 이수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2월
평점 :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무언가를 품고 살아.
세상 사람 모두가 자신의 생각을 일일이 입 밖에 내기 시작하면, 우리 사회는 순조롭게 흘러갈 수 없을 거야.
밖으로 털어놓지 못한 생각은 응어리로 남지. 그래서 사람들은 항상 그 응어리를 토해낼 구멍을 찾고 있어." <p.128>
파장의 공명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갖고 있는 우리의 주인공 '야나세'
대학시절 뇌에 관한 강의를 여섯 번 정도 들은게 다 인, 학교를 그만둔지 3년도 더 된 옛 제자인데 용케 신문에서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 자신이 죽인 여자의 딸을 지켜달라는 가사이 교수의 부탁을 받고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편지에 첨부된 지도를 들고 교수의 집을 방문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야나세는 학교에서 손을 놓은 아이들이 모인 '어피니티 학원'에서 시간강사로 일을 하는데 그곳에서 어두운 과거와 마음을 가진 여러 아이들을 대면하게 된다. 이유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료지와 자신의 아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알면서도 눈을 감고 있는 료지의 어머니, 아이들 사이에 '해결사'로 유명한 미카, 그런 딸을 버리려고 하는 미카의 아버지 등 어둡고 음침한 과거사를 갖고 있는 이들 일색이다. 그곳에서 야나세는 사건의 진실과 어두운 것의 본질에 맞닥뜨리며 그들이 감추려 했던 진실을 목도하게 되는데 . . .
미싱, 모먼트, 파인데이즈에 이은 네 번째 만남.
흥미로운 소재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그것만을 부각시켜 강조하지 않는, 차분하면서도 사람 사는 냄새를 물씬 풍기게 만드는 그의 이야기 스타일이 맘에 들어 그의 작품엔 무조건 손이 간다. 이 책이 나올때만해도 무척 읽고 싶어 이런저런 이벤트에 도전 많이 했더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 응모해 받은 책은 '얼론 투게더'가 아닌 '미싱'.
그렇게 다른 책을 읽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소담출판사 덕분에 뒤늦게 이렇게 내 손에 들어와 읽게 되어 몇배 더 행복하다는 ~
보고 싶지 않은 마음속 어두운 진실과 마주해야만하는 '저주'에 걸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지라 결코 밝은 내용은 아니지만 요며칠 더위에 지쳐 잠 안오는 밤에 진지하게 푸욱 빠져들어 읽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부대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이 사회에서 이런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 아닌 저주일 듯 !!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인데 알고 싶지 않아도 알아지는 사람이라니 ~
가끔은, 아주 가끔은, 모르는게 약이요 아는게 병일 때가 있는데 야나세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사람은 누구나 고유의 파장을 지니고 있다. 그 파장은 골짜기를 만들고 산을 만들며,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떨리면서 그 사람의 분노를 만들어낸다.
기쁨을 만들어낸다. 슬픔도 만들어낸다. 또 즐거움도 만들어낸다.
나는 그 파장을 느낄 수가 있다. 상대방의 파장에 내 파장을 맞출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두개의 파장이 겹쳐지면, 그 사람은 나를 타인으로 여기지 않게 된다.
거울을 보며 혼잣말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숨길 필요도, 속일 필요도 없어진다. 하지만 그것을 능력이라 부를 수는 없다. 오히려 반사작용에 가깝다.
상대방의 파장을 느끼는 순간,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내 파장이 저절로 동조하기 시작한다.
그 힘을 완전히 조절하기란 여전히 어렵다. 조절하지 못한 힘이 어떤 상황을 초래하는지, 아버지가 몸소 보여준 셈이다. 저주, 아버지는 그 말을 남겼다. <p.132>
폭주의 힘에 못 이겨 어머니를 죽이고 자살한 아버지. 아버지가 사망하고 사건의 여파가 모두 가신 후 의학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고 그 힘이 저주에 의해 부여된 것이라면 그 저주를 해독해야겠다는 생각에 급진적인 내용의 뇌신경 관련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는 가사이 교수에게 관심을 갖고 마침내 그 교수가 있는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심했지만 교수로부터 모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 대학에 다녀야 하는 의미를 잃고 만다. 무엇을 해야할 지 알수가 없어 매달 아르바이트로 버는 수입과 부모님이 남겨진 얼마 안 된 재산을 탕진하면서 아무 목적없이 살아온 그. 큰 상처를 안고 있으면서도 삐뚤어지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아무렇게나 휘두르진 않으니 나름 멋지게 성장한 것 같다.
내가 야나세라면 . . . 나라면 그 능력을 껴안고 어찌 살아갈까 ? 살아갈 생각이나 했을까 싶어 끔찍해지는 ㅠㅠ
새삼 평범하고 평온한 내 삶에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평범한 인생이 뭐가 어때서 그래 ?"
"똑같은 인생이란 없어. 아무리 평범해도 그건 너만의 것이야. 그 평범함에 자신감을 가지면 되는 거야." <p.176>
이유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료지라는 캐릭터 빼고는 다들 공감가는 캐릭터라 더 맘에 드는 얼론 투게더.
특히나 야나세에 버금가는 어떤 능력이 있을 것 같은 '다치바나 사쿠라'와 아이들 사이에 '해결사'로 유명한 미카를 필두로 후속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게 아니라면 작가의 신작을 빨리 만나볼 수 있기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