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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하이웨이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31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다른 사람에게 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어제의 나 자신에게 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P.09>
머리가 매우 좋은데다가 공부도 열심히 해 크면 분명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초등학교 4학년 '아오야마'
매일 착실히 노트에 많은 것을 기록하고 책도 많이 읽고 있지만 알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소년은 초반부터 다른 사람에게 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어제의 나 자신에게 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 말하며 날 놀라게 만든다. 하루하루 세계에 대해 배워나가면 어제보다 조금씩 훌륭해질거라며 먼 미래 너무 훌륭해져서 큰일이 나는 건 아닐까를 걱정하는, 다소 엉뚱한 면이 많는 아이.
언제나 노트를 갖고 다니며 메모하고 우주과학 잡지를 탐독하는 데 이 책 '펭귄 하이웨이'는 5월의 어느 날 마을에 펭귄이 떼 지어 나타나지만 트럭으로 운반하던 펭귄들이 한 마리도 남지 않고 모두 사라진 사건을 본 후 치과 누나로부터 이 수수께끼를 풀어달라는 부탁을 받은 아오야마가 '펭귄 하이웨이' 연구에 착수하면서 시작된다. 욕조에 목욕물을 뺄 때면 배수구가 블랙홀 같아서 무섭다는 '우치다'와 요이야마처럼 상대성 이론에 대해 알고 있는 '하마모토'와 함께 마을 구석구석을 답사하며 궁금증을 해결해나가는 친구들. 과연 이들은 이 거대한 수수께끼를 풀 수 있을까?
세계의 끝에 걸어서 가 닿을 수 있을 것만 같던 유년시절의 소박한 호기심과 모험, '미지와의 조우'와 시간이나 죽음에 대한 우주적이고 철학적인 상상력, 첫사랑의 설렘과 우정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소설 '펭귄 하이웨이'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읽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이야기에 그의 팬이 되어 버린 나.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유정천 가족, 태양의 탑, 요이야마 만화경,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까지 줄기차게 읽었다는~
이렇게 부지런히 읽었는데도 달려라 메로스, 연애편지의 기술, 여우 이야기가 남았다. 조만간 시간내 나머지 책들도 열심히 읽어야지!!
가벼운 듯 하면서도 풋풋한 내용이 몰입 잘 되서 기분전환하기 딱 좋은 책인지라 휴가철 이 책과 함께했는데 전작에 대한 만족감으로인해 작가의 이름이 주는 기대치도 큰 편인데 일본서점대상 3위, 일본SF대상 수상작이란 타이틀 때문에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져가는 것은 어쩔수가 없었다.
이 책 역시 초현실적인 분위기 속에 유머 넘치는 문체가 파란만장하게 펼쳐지는데 초등학생 주인공 때문에 기대치에 비해 재미는 좀 덜했지만 혼자 똑똑한 척 다 하며서도 뇌가 무척 활발하게 활동하기 때문에 뇌가 필요로 하는 당분을 위해 단 과자를 많이 먹게 됐고 낮 동안 뇌를 많이 쓰는 바람에 밤이 되면 칫솔을 들지도 못할 정도로 졸려 이를 닦을 틈이 없어 치과를 다니게 된 사연을 설명하는 부분에선 애는 애구나 싶어 웃음이 난다. 초등학생 레벨을 뛰어넘을 만큼 훌륭해져버린 자신과 달리 여동생은 아주 평범한 초등학교 2학년인데 오빠가 얼마나 비범한지 잘 모르지만 나쁜 아이는 아니라며 여동생을 소개하는 모습과 그런 여동생을 보며 마음속으로 '오빠로서 네가 구김살 없이 자라주길 빌게'라 말하는 소년.
애 맞구나 싶다가도 금방 소년의 탈을 쓴 노인이 아닐까 싶은 애늙은이 다운 모습에 피식피식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아오야마. 음료 캔으로 펭귄을 만들어내는 치과 누나, 깊숙한 재버워크의 숲속에 투명 물체로 만들어져 지상에 떠 있어 미항공우주국이 개발한 신형 우주선일지도 모르는 '바다'등 다소 엉뚱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도 부담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지 않았나싶다. SF, 판타지, 성장소설이 한데 어우러져 산뜻한 즐거움을 주는 '펭귄 하이웨이' 덕분에 이 작가의 신작 소식이 들리면 무조건 서점으로 달려갈 것 같다.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건 대부분 몇 번 틀리고 나서야. 하지만 훈련을 쌓은 사람은 뭐가 문제인지를 점차 더 빨리 찾아내게 되지." <P.103>
아무리 엉뚱한 질문일지라도 아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노트 쓰는 법을 알려주는 아버지. 매일 발견한 것들을 기록해두라는 조언은 물론 문제 푸는데 필요한 도움되는 말들을 아끼지 않는 아오야마의 아버지를 보며 진정한 '아버지상'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현명한 부모가 되고 싶단 욕심은 많지만 행동으로 옮기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럴때마다 읽고 반성하고 또 새겨듣기 위해 노트에 잘 적어둬야겠다.
부모가 자녀의 인생에 남겨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좋은 습관이다.
그리고 그 못지 않게 중요하고 강력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따뜻한 추억일 것이다.
- 시드니 해리스(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