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로의 레시피 - 39 delicious stories & living recipes
황경신 지음, 스노우캣 그림 / 모요사 / 2011년 5월
평점 :
"선생님, 콩나물에 물을 주면 전부 아래로 빠져나가버리잖아요? 콩나물은 물을 먹지도 않는데 어떻게 저렇게 쑥쑥 자라요?"
"너는 오늘 학교에서 배운 걸 내일 다 기억할 수 있니? 아마 반 정도 기억할까? 그다음 날이 되면 반의 반, 또 그다음 날이면 반의 반의 반밖에 생각나지 않겠지.
그러다가 언젠가는 다 잊어버릴 거야. 하지만 너는 아무것도 배우기 전의 너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겠지 ? 콩나물도 그렇단다.
우리가 준 물이 다 아래로 빠져나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조금씩 자라는 거야.
네가 너도 모르게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콩나물도 그렇게 자라는 거란다."
착한 콩나물 中에서 <p.184~185>
감성적인 글을 선보여온 황경신과 '스노우캣'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권윤주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음식 에세이 "위로의 레시피"
나는 하나의 레몬에서 시작되었다, 유령의 일기, 세븐틴, 슬프지만 안녕, 밀리언달러 초콜릿, 초콜릿 우체국, 그림같은 세상, 생각이 나서 등등 그녀의 많은 책을 읽었지만 모두 같은 듯 다른 느낌을 담고 있으니 읽을때마다 반갑고 신기하다. 22명 화가들의 삶과 그림 속으로 여행을 떠났던 '그림같은 세상'이 그러했고, 상큼한 연애이야기가 담긴 '모두에게 해피엔딩', 불의의 사고로 유령이 된 스물셋 여대생의 이야기를 담은 '유령의 일기', 페이퍼에 연재해온 글들을 모은 '초콜릿 우체국'등 하나 둘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다. <위로의 레시피>란 제목을 보고 그녀가 음식 에세이를??하며 의아해했는데 이 책 역시 그녀만의 감성적인 이야기가 물씬 풍기면서도 맛있는 음식 이야기가 조화롭게 담겨있으니 신기하면서도 재밌다 +_+
쌀이랑 김장김치 썰어넣고 팔팔 끓여 먹기만 하면 되는, 아버지가 만들어 주셨던 '김치밥국'처럼 오로지 그녀 혼자만의 추억이 담긴 음식도 있고, 라면, 수제비, 카레라이스, 참치 통조림 하나면 무조건 오케이였던,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지만 꽤나 비슷한 사연이 담긴 음식도 있어 신기했는데 그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는 추억의 한 그릇에 대해 어쩜 이리도 맛깔난 글을 쓸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나에게도 그녀 못지 않은 수십 수백여가지의 추억의 음식이 있지만 그녀처럼 이렇게 선명하게, 바로 어제일처럼 세밀하고 맛깔나게 이야기하라 한다면 한참을 생각에 잠기고, 기억해내고, 재생하려 애쓰리라. 그리해도 간단히 그리고 아주 간신히 몇가지밖에 이야기 하지 못할 듯~
앞뒤 상황, 감정 하나 놓치지 않고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그녀가 너무 대단해 보인다. 이래서 작가라는 타이틀이 붙는건가 싶으면서도 작가이기전에 추억할 일이 많은 그녀의 삶이 마냥 부럽기만하니 큰일이다. 지금부터라도 맛있는 음식, 재미난 사연은 꼬박꼬박 메모라도 해놔야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 ~
나의 날들은 여전히 모래알처럼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터무니없이 쉽게 보내버린 시간들은 바싹 마른 나뭇잎처럼 무의미하게 굴러다닌다.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을 까마득히 잊어버린 채, 중요하지도 않은 일들에 마음을 빼앗기며 하루를, 일 년을, 그리고 평생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온 힘을 다해 새롭게 시작되는 하루를, 매일 새롭게 시작되는 기억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하는 건 아닐까 ?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생각하면, 그 속에 포함된 걱정과 두려움과 기대가 마음을 어지럽힌다.
오늘만을 생각하면, 어지러운 걱정과 그것을 닾을 순간의 위안에 마음 쓸 필요가 없다.
일용할 양식, 일용할 겸손, 일용할 성실함과 일용할 사랑만을 구하여,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그런 삶 안에서, 매일의 해는 '새 해'이고 매순간은 기적이다.
낯선 곳의 사과 한 알 中에서 <p.201>
식객, 미스터초밥왕, 맛의 달인, 아빠는 요리사, 어시장 삼대째, 셰프, 따끈따끈 베이커리, 심야식당 그리고 명가의 술이나, 신의 물방울, 대작 등등 음식 관련된 만화도 꽤나 좋아하는데 근래 막걸리를 소재로 한 만화 '대작'을 제외하곤 통 음식 이야기를 접하질 못하고 있었는데 어떤 음식을 만들어 먹을때마다 나중에 이 음식을 기억하게 될까? 어떤 추억과 함께 떠울리게 될까를 생각하느라 한동안은 위로의 레시피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듯 싶다.
그만큼 누군가의 삶의 한 단편을 다른 것도 아닌 음식으로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PART1 UNDER THE RECIPE, PART2 OVER THE RECIPE>보다 <PART3, BEYOND THE RECIPE>가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특히나 <왼손잡이 여인의 커피>,<온몸의 힘을 빼고 해피엔딩>,<나는 너의 밥이다>, <머핀과 스파게티의 법칙>은 몇번을 읽고 또 읽어도 신선하기만 하다는 ~
특히나 <온몸의 힘을 빼고 해피엔딩>은 결혼후 완벽한 아내, 사랑받고픈 며느리이고픈 나의 욕심에 나 스스로가 지쳐갈 즈음에 읽게 된 글이라 그런지 많은 위로가 됐던 것 같다.
마음을 편하게 갖고 여유롭게 다시 시작해봐야할 듯 ~
"온 몸에 힘이 들어간다는 건 ,뭔가 불안하기 때문이야. 나를 믿지 못하고, 세상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지. 그래서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는 거야.
온 몸에 가시를 세우게 되고, 그러다 제풀에 지쳐서 진이 빠지는 거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악으로 깡으로' 노력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인생은 스무 살에 끝나는 마라톤이 아니었어."
"서른 살에도 마흔 살에도 달려야 하는 게 인생이니까." <p.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