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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보수 일기 - 영국.아일랜드.일본 만취 기행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모든 것은 듣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p.187>
온다 리쿠의 이야기를 좋아해 출간되지마자 구입하긴 했는데 결혼식 후유증인지 5월 한달동안 글자가 눈에 안들어와 책을 읽지 못해 고생했다.
한 두권 읽긴 했지만 책을 읽을수가 없어~ 라는 좌절된 기분은 쉬 사라지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자마자 거짓말처럼 그런 기분이 싹 사라진 듯 다시 재미나게 책을 읽고 있는 요즘 ^^
소설이 아닌 에세이인지라(그것도 영국,아일랜드,일본 만취 기행이라니 크크크) 별로라는 얘기도 있어 큰 기대를 안해서 그런가, 온다 리쿠의 이야기라면 다 좋다는 인식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외로 난 너무 재밌게 읽은 듯 ~
이 작가에게 이런 면이 ? 싶을정도로 꽤나 엉뚱한 얘기가 많아 혼자 키득키득 웃느라 정신 못차린듯 !!
만인이 공유하는 공포도 있지만 사적인 공포도 있는데 온다리쿠는 '비행기'가 무서워 해외여행을 가본적이 없을 정도란다.
워낙 유명 작가라 비행기를 타고서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이야기의 소재를 찾고 그것에 멋지게 살을 붙여 책을 출간한 줄 알았는데 웬일!!!
홍차와 안개, 탐정과 살인마잭의 나라 '영국'에 도착해 스톤헨지, 에이브베리, 솔즈베리 대성당, 테이트 갤러리 전을 본 이야기보다 비행기를 타고 내리기까지의 과정샷이 그 어떤 소설보다 큰 재미를 안겨줄 줄이야 ~
<공포의 보수>는 충격을 주면 폭발하는 니트로글리세린을 운반하는 과정을 그린 서스펜스 영화의 명작인데 내 안의 공포가 폭발하지 않도록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며 달래는 상태랄까 ~ 비행기에 타야 한다는 사실에 공포에 질려 이 기행문을 시작하게 됐다며 <공포의 보수 일기>로 책 제목을 정한 이것 역시 참으로 작가다운 발상이 아닌가 싶다.
영국에서 아일랜드로 이동해 뉴그레인지와 타라의 언덕, 작가박물관, 크라이스트처치, 성패드릭 대성당, 트리니티칼리지를 둘러보고 펍에서 맥주를 마신 이야기 등등 책을 읽는 내내 온다리쿠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 좋았던 것 같다.
정말 좋았던 것은 그녀의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 좀 더 알게 됐다는 것이랄까 ~
초등학교 6학년때 SF를 썼다는 것, 유적을 좋아하고, 흐린 하늘의 풍경을 좋아하고, 단것을 싫어한다는 것은 물론 그녀가 좋아하는 책 이야기도 실컷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무서웠던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이해 불능이라는 점에서는 고등학교 때 수학Ⅱ와 물리 교과서가 무섭고, 생리적으로는 곤충 도감이라던지 가정의학의 질병 해설이 무섭고, 환경 호르몬이라든지 에볼라 베이러스, 국가 재정 파탄을 해설한 책이 또다른 의미에서 무섭다는데 소설 중에서 진정 오싹한 순간을 선사한 것은 애거사 크리스티 뿐이었다면서 그녀의 작품중 베스트 3을 소개한다.
[끝없는 밤], [잠자는 살인], [메소포타미아의 살인]이 무섭다는데 올여름 이 책들을 읽으며 무더위를 나야겠다는 ㅎㅎ
교고쿠 나쓰히코와 모리 히로시를 발굴해 고단샤뿐 아니라 출판계 전체의 매상에 공헌한 덕에 대번에 부장으로 승진한 K부장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어떤 계기로 어떤 소설을 쓰게 됐다는 식의 뒷이야기(소설을 쓸 때 마음에 드는 제목 먼저 생각해놓는데 테이트 갤러리에서 본 '에어하트 양의 도착'을 보고, 영국을 무대로 남녀가 엇갈리는 멜로드라마 '라이온 하트'라는 연작소설을 쓰게 됐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끄덕)를 읽는 것도 쏠쏠.
그녀가 쓴 미스터리에는 '과거' 이야기가 많은데 눈앞에 있는 사건, 현재 진행형의 원색적인 사건보다 이미 과거가 된 것,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것일 때 더 안심하고 다룰 수 있고 무엇보다 경찰의 수사방법도 잘 모르겠고 조사하기도 귀찮아 그렇다는 이야기에 미스터리 작가가 이래도 되나 ? 의아할 법도 한데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고 묘하게 설득당하고 말았다 크크크
어른스럽고 국제적인 도시 '런던', 시골의 도회지같은 '아일랜드'는 물론 기회가 된다면 기린 요코하마 비어 빌리지, 삿포로 맥주 주식회사, 오키나와 오리온 맥주 나고 공장도 방문해보고싶다 ㅋ
술을 즐겨 마시는 사람이 아닌데도 이 책을 읽을땐 시원한 맥주 한잔 생각이 어찌나 간절하던지(그것도 세 번 따르기 방법으로-책을 읽으신분만 무슨소린지 이해할 듯~)
안주도 필요없을 것 같았다. 그녀가 풀어놓는 이야기만으로 충분하니까 ㅋ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그녀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 맥주 한잔이 간절해지는 기분, 다음 작품의 시작이 될지도 모를 구상집을 읽는 기분에 푹 빠질 것이니 기대하셔도 좋을 듯~~

마음에 드는 장소, 분위기 있는 장소를 만났을 때 그곳을 무대로 무슨일이 일어날지를 생각해본다는 그녀.
장소에 힘이 있으면 이상스럽게도 시각적 이미지가 머릿속에 잇따라 떠오른다는데 ~
작가니 그렇겠지 하고 치부하지 말고 나 역시 내 자리에서 내가 보고 들은 것들로 멋진 이야기,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낼 줄 아는 현명한 여자가 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