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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보스 문도스 - 양쪽의 세계
권리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4월
평점 :
권 리의 암보스 문도스.
암보스 문도스(Ambos mundos)는 스페인어로 양쪽의 세계란 뜻을 갖고 있는데 예술가들은 짧은 정열을 작품으로 탄생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세계의 안과 밖, 즉 양쪽의 세계를 들락거리며 정력적으로 고통을 추구하는 자들로 권 리 역시(그리고 우리들 모두) 타인의 기준과 상관없이 자신만의 암보스 문도스를 꿈꾸는 사람이라 말하고 있다.
2000년부터 현재까지 약 45개국을 여행하였으며, 앞으로 방문해보고 싶은 나라는 북한이라는 그녀.
이 책은 2007년 유럽과 남미 여행, 그리고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2002년 러시아와 유럽 여행을 묶어서 낸 여행 에세이로 2007년 여행기를 '웹진 문장'에 연재하다가 내친김에 2002년 여행까지 거슬러 올라갔고, 전체적으로 다시 고쳐 쓴 것이라고 한다.
여행기답게 프랑스에서 거리 공연을 보고, 미술관 순례를 다니고, 거리를 하릴없이 돌아다니다 영화관에 들어가 영화 한편을 보기도 했다는 유유자적한 얘기도 들려주지만 어느순간 여행 경비를 위해 카지노 카페에서 두달간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을 도둑맞기도 하고, 비행기를 놓쳤다 고급호텔 숙박권과 600유로의 보상을 받는 행운을 갖기도 하고,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뒤집힌 모양의 2,847미터 높이의 화산섬 '비야리카' 등산을 하기도 하고, 가로 5킬로미터, 세로 30킬로미터, 높이 6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빙하, 페리토 모레노를 보러 가기도 하고,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에서 3박 4일이 걸리는 W자 트레킹을 하고 나선 3년간 기른 머리를 삭발 하는데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생각없이 지하철을 탔다 남자로 오인받아 떠밀리듯 다른칸으로 옮겨야 했던 일등 깨알같은 경험담을 담고 있어 이 책은 확실히 여행기가 맞다 싶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여행기와 확연히 차별화되는 부분은 나라별, 상황별에 맞는 문학 작품 소개는 물론 자신의 생각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녹아내려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한번 읽어봐야지 하고 적어논 리스트가 장난아니라는 ~
그 중 일부를 얘기하자면 알베르 카뮈의 <안과 겉>, <결혼여름>, 조지 오웰의 <파리, 런던 방항기>, 이사벨 아옌데의 여성 3부작에 속하는 <영혼의 집>,<운명의 딸>,<세피아빛 초상>,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체 게바라의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가 되겠다.
내가 책을 펴는 한, 책의 저자들은 철저히 내 남편이었다. 도스토엡스키가 술과 도박과 여자라는 3대 악에 찌든 방탕한 남편이라면, 카뮈는 남편이 없는 사이 바람을 피우고 싶은 상대였다. 전자가 나랑 한바탕 싸우고 집을 나가버릴 것 같은 남편이라면, 후자는 내게 외투를 입고 정오에 산책을 나가자며 차를 대기시키고 있을 것 같은 남편이다. <p.32>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은 한번도 못해봤는데 이 부분을 읽고 빵 터졌다. 오늘부터 책을 읽으땐 나 역시 어떤 저자가 남편감으로 딱인지 분석(?)좀 해봐야겠다는 ~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책이 서점과 도서관 지원들을 혼란스럽게 했으면 좋겠다는 그녀. 여행기 코너에 놓아야 할지, 철학 코너에 놓아야 할지, 예술 일반에 놓아야 할지, 아니면 문학과 취미 코너 사이의 애매한 선반에 놓아두어야 할지 토론을 벌여도 괜찮다 말하는 부분이 있어 이 책의 내용이 어떻길래? 라는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굉장히 딱딱하고 어려울 것 같은인식에 사로잡힌 것도 잠시, 깨일같은 재미에 금방 푹 빠져버리게 됐다.
다 읽고서야 이 책을 어디에 둬야할지 나 역시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는데 '책'이라는 것에 두드러기 증상(?)이 나타나는 사람을 위해 한권은 여행기 코너에, 다른 한권은 문학과 취미 코너에 놓어있어도 좋을 듯 싶다. 많은 사람들이 부담없이 손에 들고 읽었으면 좋겠다는 !!
여행기가 유행 아닌 유행처럼 번진 시기가 있어 나 역시 구입한 책이 수십권인데 이 책 역시 산뜻한 표지로 바꾸고, 사진도 첨부해 넣고 나라별 상황별로 단락을 나눠 조금은 가볍고 화려하게 치장하면 잘 팔리겠다 싶어 욕심나지만 평범한 모습으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보물지도 같은 모습으로 서점에 남아도 좋겠다 싶다.
아무리 험난한 여정이 담겨 있어도 이런 책을 읽고 나면 언제고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지금 당장 떠나고 싶다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시간도 돈도 없어 당장 떠날수없는 나는 . . . 환상이 무너져 내리면서 자신의 유럽의 도시들을 편애해왔다는 것을 반성하며 자신이 오랫동안 자라온 도시(서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는 그녀말처럼 어디에도 특별한 도시란 없다. 특별한 의미와 시선을 갖고 대하는 곳만이 특별한 도시가 된다. <p.67> 말을 잊지 말아야겠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곳을 평범한 삶이 지속되는 장소가 아닌 누군가 그토록 떠나오고 싶었던 곳이라 생각하고 여행자의 마음으로 지내다보면 조금은 더 설레고 기분좋지 않을까.
좋은 예술가는 자기 세계가 있어야 하지만 , 바로 그 세계를 탈출할 수 있어야 진정한 예술가가 될 수 있다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