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란한 보통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무척이나 오래간만에 에쿠니 가오리 소설을 집어든 것 같은데 찾아보니 2010년 12월 초에 ’달콤한 작은 거짓말’을 읽었으니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닌 듯~
그럼에도 왜 항상 그녀의 책을 읽을 때면 오래간만에 읽은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신간이 나오길 눈 빠지게 기다릴 정도로 그녀의 골수팬인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신간 소식이 들리면 저절로 집어 들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작가.
그러다 보니 집 책장 한쪽엔 에쿠니 가오리 소설만 꽂아놓은 칸이 따로 있을 정도 ^^
손으로 한땀 한땀 수를 놓은 듯한 표지의 이 책.
그녀의 작품 스타일 중 유일하게 불륜을 미화하는 듯한 표현에 거부감이 큰 편인데 이 책에선 그런 내용이 없어 재밌게 읽었다.
윌리엄의 죽음이라던가, 남자 친구 ’후카마치 나오토’에게 하는 행동 중 몇몇 표현을 제외하곤 굉장히 평범하면서 따뜻하게 다가왔다고나 할까 ?
잔잔하면서도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묻어나는 책이니 그녀가 그려내는 어딘가 이상한(?) 이야기에 손대기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맘 편히 읽을 수 있을 듯 ~
표지만큼이나 햇살이 눈 부시고, 하늘이 푸른 날에 읽어서 그런지 기쁨이 두 배였던 것 같다.
가족들의 얼굴이 다 보이지 않는다며 카운터 자리를 꺼려하는 아빠, 나이가 들어도 소녀의 감성을 가지고 있는 엄마, 아기를 가진 걸 알면서도 이혼한 큰딸 ’소요’, 다른 여자의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고 싶다는 둘째딸 ’시마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집에서 놀고 있는 셋째딸 ’고토코’, 학교에서 정학을 당한 막내아들 ’리쓰’까지 ~
얼마나 요란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살짝 겁이 날 정도였는데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특이하다면 특이한 그들의 이야기는 나에겐 마냥 따뜻하고 부럽기만 한 그런 가정의 모습이었다.
- 한밤의 산책이 습관이 된 셋째딸 ’고토코’
요즘 같은 세상에 (?) 밤늦게 돌아다니는 딸의 행동이 이해 안 되고 속상할 법도 하지만 마음이 있는 곳이 중요하다 말하는 가족이기에 이것 또한 존중해주는 듯 ~
- 남자친구가 왼손잡이면 참 좋겠다 생각한 그녀는 넉 달 동안 연습해 오른손을 뻗어 남친의 손을 잡으면서 왼손으로 식사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런 나오토의 행동이 꽤 독특하면서 개성 있게 느껴지더라.
누구에게나 ’한번 이렇게 해보고 싶었어’라 말하며 행동에 옮기고 싶은 것들이 있을 테니 !!
- 미성년자에게 술을 권하지 않고, 손님이 돌아갈 때 가족 전원이 모여 배웅하는 습관 이라던가, 어릴때 부터 엄마일을 거들거나 옆에서 책을 읽게 하는 일도 멋지게 보였다.
예전엔 마냥 당연했던 일인데 이런 것들이 요즘은 교육 잘 받은 집에서나 가능한 멋진 일로 바뀌어버린 듯 ;;
- 12월 첫째 토요일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사고, 식구들 생일이면 엄마가 음식을 만들지만 1년에 딱 한 번 엄마 생일에는 항상 외식 하는, 입학식 때면 반드시 가족사진을 찍는 집.
- 버스로 이동 시 서로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 인 것처럼 ’남남게임’을 하는 가족. 각자 책을 읽으면서도 다 같이 노는 느낌이 들게 하려고 ’독서놀이’를 하는 그들이니 오죽할까 ㅎ
우리 집은 항상 이래 ~ 이런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 우리 집에도 존재했던가 ????
아버지가 고지식해 벌어지는 사건사고 빼곤 할 말이 없네 ㅠ-ㅠ
개인이 아닌 가족 구성원 전체가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그대로 녹아내려있어 더 흐뭇했던 책.
내가 꿈꾸는 그런 가족의 모습이 많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 놀랐다.
아들이 정학 당해 졸업식에 참석할 수 없게 됐는데도 "괜찮아, 엄마는 정학도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 "무슨 일이든 다 경험이잖아" 라고 말하는 엄마.
마음이 있는 곳이 중요하다며 "그러니까 만에 하나 네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 갔다면, 그때는 거리낄 것 없이 그 사람 품으로 가거라" 말하는 엄마.
나도 자식들의 의견과 개성을 존중하면서 이런 충고와 격려의 말을 할 수 있는 멋진 엄마가 될 수 있을까 ?

때로 인생에 대해 생각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시간에 대해, 그동안에 생기는 일과 생기지 않은 일에 대해, 갈 장소와 가지 않을 장소에 대해 그리고 지금 있는 장소에 대해.
대개는 낮에 인생을 생각한다. 그것도 아주 날씨가 좋은 낮. 싸늘한 부엌에서. 전철 안에서. 교실에서. 아빠를 따라간 탓에 혼자서만 심심한 책방에서.
그런 때, 내게 인생은 비스코에 그려진 오동통한 남자애의 발그레한 얼굴처럼 미지의 세계이며 친근한 것이었다.
내 인생. 아빠 것도 엄마 것도 언니들 것도 아닌, 나만의 인생. <p.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