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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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과 그 자신이 일치하는 자가 얼마나 될까. 삶 따로, 사람 따로, 운명 따로. 대부분 그렇게 산다. <p.323>

 

세상은 '지난밤 일'을 '세령호의 재앙'이라 기록했다. 아버지에게 '미치광이 살인마'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를 '그의 아들'이라 불렀다. 그때 나는 열두 살이었다 -

열두 살짜리 여자아이의 목을 비틀어 살해하고, 여자아이의 아버지를 몽치로 때려죽이고, 자기 아내마저 죽여 강에 내던지고, 댐 수문을 열어 경찰 넷과 한 마을주민 절반을 수장시켜버린 미치광이 살인마의 아들, 그 광란의 밤에 멀쩡하게 살아남은 아이. 최서원.

사건 이후 작은 아버지네에 위탁된 서원은 작은아버지에서 큰고모, 큰고모네에서 둘째 고모네, 이모네에서 삼촌네를 전전하지만 그들의 애정도 서원의 유산을 양육비 명목으로 공평하게 나눠가질 때까지일뿐. 덩그러니 홀로 남게 된 서원이 전화할 유일한 사람은 사건이 일어나기전 한 집 한방을 썼던 아저씨 승환뿐이다. 그렇게 다시 함께 살게 되지만 그날의 사건은 그들을 한시도 가만히 내버려두질 않는다. 따돌림과 고의적 시비만으로도 한길 낭떠러지를 걷는 것 같은 그들에게 끊임없이 날아드는 선데이매거진까지 ~

바다를 따라 동쪽에서 남쪽으로, 남쪽에서 서쪽으로 정처없이 떠돌게 된 그들은 등대마을에서 네계절을 보내며 간신히 정착하는가 싶었는데 얼마 안되 그곳에서 잠수한 사람 두어명이 죽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그들은 다시 한번 세상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

그 때 청년회장에게서 받게 된 상자 하나. 거기엔 아저씨의 취재수첩, 레코더시계, usb, 편지묶음과 스크랩북, 세령호라 쓰인 아저씨가 쓴 원고가 들어있는데 . . .

 

 

그렇게 2004년 8월 27일의 오후, 7년전 여름으로 돌아가 들려주는 그날의 이야기에 툭. 툭. 툭

책을 읽는내내 심장이 몇번 떨어졌는지 모르겠다. 분노와 두려움, 절박함. 화나서 한번, 안타까워서 한번, 슬퍼서 한번 . . .

운명이란 말을 믿진 않는데 책 속 주인공 어느 한사람 빠지지 않고 모두 그 어디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촘촘한 그물에 걸린 물고기 신세 같달까 ~

운명의 장난이란 말은 이럴때 쓰는 말이 아닐까 ? 그러지 아니고서야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그리워지나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은 한 순간에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은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은 오고야 말리니

 

푸쉬킨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한국 소설 맞아 ? 여성 작가가 쓴 소설 맞아? 믿을 수 없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에 단번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오랫동안 조심조심 굴려온, 돌보다 더 단단해진 눈덩이에 크게 한방 맞은 느낌이다.

오랜 시간 준비하여 야심차게 내놓은 소설답게 스케일이 다르다. 그 사건을 지켜봐온 사람인냥 이야기의 흐름에 몸을 내맡기다보면 한사람 한사람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사건이기도 하고, 소설이기도 하고, 인터뷰 글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삶이기도 한 이야기.

그렇게 나는 아버지 최상사를 잊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는 현수가 되었다가도 서원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몸파는 일과 강도짓만 빼곤 다 할 수 있다는 은주가 되었다가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통제하고, 교정하는 영제가 되었다가 불쌍하게 영혼이 되어버린 세령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더 오랫동안 이 책을 잊지 못할 것 같다는 ~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예스' 라고 대답." <p.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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