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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모든 일에는 반드시 이유라는 것이 있다. 세상일 전부에 분명히 이유가 있어.
내 다리가 잘린 것도, 그때 그 녀석을 제대로 찾지도 않고 도망쳤기 때문이야. 제일 먼저 도망쳤기 때문이지.
뭐든지 결국은 말이다 . . .
결국은 자기한테 되돌아오는 법이야 " <p.189>
2011년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의 달과 게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바위터 그늘에 미리 설치해둔 블랙홀(수제 통발)을 확인해 소라게가 잡히면 라이터로 소라를 지져서 게를 꺼내는 놀이에 푹 빠진 신이치와 하루야.
불로 껍데기에 열을 가하면 놀란 소라게가 속에서 기어 나오는데 쏜살같이 도망치는 소라게를 잡아 바다에 내던져줬던 아이들이 돈을 갖고 싶다는 소원 이후 우연찮게 바닷가 물웅덩이에서 500엔을 발견한 후 소라게를 신으로 모시는 의식을 진행하고 놀이에 불과했던 소원 빌기가 점차 누군가를 이 세상에서 없애 달라는 잔혹한 소원으로 변해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미스터리하게 담고 있다.
그렇게 변할 수 밖에 없는 현실, 마냥 철없고 순수해 보이기만 하는 아이들에게 무슨일이 일어난 것일까 ?
달과 게는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들의 이야기를, 초등학생답게 순수하면서도 각자 자신의 고민을 철저하게 숨기려 애쓰는 세 아이의 미묘한 심리는 물론 사로고 한쪽 다리를 잃고 그 기억을 끊임없이 되새김질 하는 할아버지 '쇼조'와 아들의 일에 무관심한 엄마 '스미에', 경제적인 어려움에 생긴 스트레스를 아들을 학대하는 것으로 푸는 하루야의 부모님 등 아이들과 어른들의 세계가 얽히고 설키면서 드러나는 복잡한 인간관계를 나른하고 조용히 그리고 무심히 그리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초등학생이 나오는 이야기는 시시하다며 좀 더 어른스럽고 사건(?) 스러운 이야기가 등장해야만 내 시선을 잡았을텐데 조카가 태어나고서부턴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이 주인공인 소설을 읽기가 쉽지 않아졌다. 이런류의 소설을 읽을때마다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고 불안한지 ~ 이 세상엔 왜 이렇게 불행하고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아이들이 많은 것인지 안타까운 맘에 숨쉬기가 힘들 정도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고민과 아픔을 전혀 몰랐으면 좋겠고 마냥 천진난만했으면 좋겠다. 아픔이 있어도 그것을 밟고 일어설 정도로 강인한 아이들(?)에게만 시련이란 시련이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마음이랄까 ㅠ-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와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는 '신이치', 10년전 신이치의 할아버지 '쇼조'가 몰았던 배의 사고로 엄마를 잃은 '나루미', 그리고 부모의 학대에 고스란히 방치된 소년 '하루야'. 두 소년과 한 소녀라는 조합과 아동학대와 가족붕괴등의 불우한 환경이라는 설정이 본의 아니게 텐도 아라타의 '영원의 아이'를 떠올리게 했는데 두 작품 모두 닮은 듯 다른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오늘 나오는 게는 먹으면 안 된다.
- 게요?
- 달밤의 게는 글렀어. 먹어도 전혀 맛이 없단다.
- 어째서요?
- 옛날부터 그런 말이 있었지.
- 달빛이 말이다. 위에서 내리비쳐서 . . . 바다 속에 게의 그림자가 생기거든.
자신의 그림자가 너무 추해서 . . . 게는 무서운 나머지 몸을 움츠리지 . . . 그러니까 달밤의 게는 말이야 . . . <p.390~391>
책 초반엔 왜 소라게가 아니고 달과 게라는 제목이 붙은건지 누가, 왜 엄마의 남자가 사라지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게 됐는지 의아할 뿐이었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알 수 없는 실체가 드러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놀랍기만 하더라. 아이들은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달밤의 게가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 계속 생각했는데, 소라게는 우짠지 신기한 것 같지 않나? 껍데기는 언제쯤부터 필요한 거겠노?
얼라 때는 전부 껍데기 같은 건 안 갖고 있다 아이가. 그래서 전부 이래 쌩쌩 헤엄쳐 다니는 거겠지?
껍데기를 짊어지믄 어느 정도 안전할지도 모르지만, 대신에 전혀 헤엄 몬 친다 아이가. 어느쪽이 좋겠노?" <p.352>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등에 짊어진 아이들. 그래서 훨훨 날아가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린 아이들.
세 아이들이 서로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일들이 반전이 되어 이야기의 흡입력을 높이는데 미치오 슈스케 다운 치밀한 구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날이 발전되가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이기에 다음 작품도 너무나 기대된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