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
김미월 외 지음 / 열림원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테마 소설집 '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

젊은 여성 작가 7인이 그려내는 비 혹은 그날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장은진 - 티슈, 지붕, 그리고 하얀 구두 신은 고양이

김숨 - 대기자들

김미월 - 여름 팬터마임

윤이형 - 엘로

김이설 - 키즈스타플레이타운

황정은 - 낙하하다

한유주 - 멸종의 기원

 

 

장은진 - 티슈, 지붕, 그리고 하얀 구두 신은 고양이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앨리스의 생활방식으로 유명한 그녀의 이야기

이혼후 집으로 돌아와 2층 다락방과 지붕에서만 지내는 남자가 고층 아파트에서 하늘하늘 떨어지는 티슈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보통 사람과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삶의 방법이 필요한 법이라는 ~ 쉽게 생각하고, 비난하고, 감싸지 않고 또 이해하지 않음으로써 상처 주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녹여놓은 것 같아 좋았던~

마음먹기 따라 얼마든지 가벼울 수도 상쾌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그. 그의 앞날이 티슈처럼 가볍고 쓸모있기를 !!

 

티슈는 가볍지만 아주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물건이었다.

화장을 지우거나 고칠 때, 눈물을 닦을 때, 사랑을 끝낸 후 분비물을 닦을 때, 물건에 쌓인 먼지를 닦을 때,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뒤처리를 할 때, 식사를 마치고 입술을 정리할 때, 그리고 여성들이 손수건 대용으로 가방 속에 소지하는 것. 어쩌면 그것은 매일 밥을 먹듯 매일 쓰는 물건임에도,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어 그 무감각할 만큼의 허무한 가벼움 때문에 사람들이 하찮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급하게 쓸 일이 있을 때만 존재 가치를 한번씩 떠올리게 되는 그것은 그래서 진정 슬픈 물건인지도 몰랐다.

사람들의 사연 어디쯤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엑스트라 역을 맡았지만 막이 내리면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비운의 그것처럼, 용도가 끝나면 쉽게 버려지듯 쉽게 잊혀지는 물건. <p.25>

 

김숨 - 대기자들

 

썩은 사랑니를 발치하기 위해 예약을 해놓고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세 번째가 되어서야 치과를 찾은 그.

자신을 포함한 여섯 명의 대기자가 저마다 의자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자신의 차례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며 가능한 한 자신의 순서가 네번째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애써보지만 점심 시간이 한참 지나서도 진료 시작할 생각은 않고 대기실은 대기자로 넘쳐난다.

그냥 가버리기엔 지나치게 오래 기다렸기 때문에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좀 더 기다려보기로 하는데 그는 무사히 사랑니 발치에 성공할 수 있을까 ?

이야기를 읽는 내내 불안불안. 그녀 대신 내가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오고 싶을 정도로 답답하고 짜증나더라. 작가의 의도가 그거라면 100% 성공한 듯 !!

 

"나는 다섯 번째 입니다. 당신은 몇 번째인가요?" <p.80>

 

김미월 - 여름 팬터마임

 

커다란 행복도 없고 커다란 불행도 없이, 작은 것들에 만족하거나 실망하면서, 그저 예측할 수 있는 일들만을 겪으며 고요히 늙어가는 것이 삶이라 오래전부터 믿어왔던 그녀는 과거를 후회하지도 미래를 꿈꾸지도 않은채 살아지는 대로 살면 그만이다 생각했는데 대학 선배의 결혼식장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면서 묘한 감상에 사로잡힌다. 자신의 삶이 자신의 삶이 아닌 것 같은 의구심.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 같은 불안함. 하지만 어짜피 되돌릴 수는 없을 거라는 체념.

세살 어린 선배 신부가 진짜 시집도 낸 시인이라며 너도 빨리 등단 하라는 남자친구의 얘길 듣고서 뜬금없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닐거라 생각하는 그녀.

그러면서 학창시절 짝사랑한 남학생 때문에 대규모 백일장에 참가해 시를 써서 장원을 차지한 사건을 얘기해보지만 진짜 재밌고 소설 같은 이야기라며 소설 쓰면 잘 쓰겠다 말하는 남친.

그녀는 그 이야기를 소설로 옮기는 작업을 하려나 ?

 

윤이형 - 엘로

 

아내이자 아들이자 애인, 유일한 친구였던 고양이 흰둥이의 티끌만한 엘로를 치료해주고자 마법의 문장을 속삭였다 죽어버리자 충격을 받은 그는 그렇게 보름을 버틴 후 집을 나서게 된다. 나흡 자누얀의 <다그치지도 목소리를 높이지도 말고>를 읽고 그와 얘기라도 나눌 양 찾아가보지만 그곳엔 그의 딸 아자레 자누얀만 있을뿐이다. 나흡 자누얀이 돌아가시기 전 썼다는 '의심에서 벗어나려는 마법사가 해야할 세가지'를 읽고 행동해보지만 모두 실패로 끝나는데 ~

짧지만 완성도 높은 판타지 소설을 읽은 기분이 들어 좋았다.

무엇보다 내리지 못하는 빗방울 언덕에서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허공에 탱글탱글 맺혀 있는 빗방울에 대한 묘사는 정말 환상적이었다는 ~

 

라 샬라 라봉봉 모하임 (너에게 행운이 있기를.) <p.109>

 

김이설 - 키즈스타플레이타운

 

키즈스타플레이타운 안주인인 그녀. 아이들은 끊임없이 태어나고, 사장인 남편의 미소와 친절도 여전해 가게는 성황을 이루지만 그녀는 행복하지 않다.

자신의 몸엔 손끝하나 대지 않으면서 선한 눈웃음을 무기로 아이들을 탐하는 남편,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즐기기 위해, 화장품과 새 옷으로 나를 감추기 위해, 그걸 가능하게 하는 돈을 주는 남편과 키즈스타플레이타운이 건재하기 위해서 함묵하는 그녀.

남편의 행동은 그녀가 모두 잊었다 착각했을뿐인 숨기고 싶은 기억을 꺼내게 하는데 . . .

 

황정은 - 낙하하다

 

삼년째 떨어지고 있다는 사람의 이야기.

나도 모르게 계속 '세계의 점이 하나의 직선 위에 있지 않고 면을 이루는 평면은 하나 존재하고 유일하다.' 라는 말을 중얼거리게 된다 ;;

 

한유주 - 멸종의 기원

 

폐암으로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받은 두 권의 책과 날씨표시상자, 그리고 불행하라는 말씀.

행복한지 불행한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고 그래서 불행했으나 그러므로 동시에 행복하기도 한 이 사람을 어찌하면 좋을런지 . . .

그런 그에게 할아버지는 '너는 죽어가고 있다. 그러니 죽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어차피 언제고 죽을 거란 말이다.' 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이 정답인 듯!!

 

 

비라고 하면 떠오르기 쉬운 쓸쓸함, 허전함, 우울함 등등의 이미지로 가볍게 써내려가지 않았을까 하는 무심한 생각과 다르게 꽤나 다양한 시선으로 일곱가지 비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읽는 그대로 이해하기 쉬운 글이 있는가하면 난해해서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지 싶은 이야기도 있다.

인간의 마음도 이 세상도 계산대로 맞아떨어지지 않는 법인데 그네들이 들려주는 비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다면 어떠랴 ~

그건 또 그것대로 괜찮으니 신기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

 

책 말미에 보니 테마 소설집 <일곱 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 에 이어 2011년 상반기중에 두 번째 테마 소설집.

이번에는 눈(snow)을 주제로한 이야기가 나올거라는데 너무 기대된다.

나 역시 첫눈을 기다리는 그 마음으로 기다려야지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