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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혼자 올 수 있니
이석주 사진, 강성은 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끝내 아무것도 고백하지 못하고 나는 걷기만 했다.
나의 여행은 시를 넘어서지 못하고, 시는 침묵을 넘어서지 못하고.
그러나 국경을 넘는 건, 꿈의 거리를 지나 죽은 내 육체를 묻고 다시 봄을 지나 겨울로 가는 건
내가 그려 넣은 내 여행의 지도 <자장가 #04 / P.271>
사진ㅣ이석주, 글 ㅣ강성은
<너 혼자 올 수 있니>는 말기 간암으로 투병 중이던 2010년 4월, 서른도 안 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사진작가 故 이석주의 유고 사진 에세이집이다.
리뷰를 쓰면서 알게 된 작가 블로그는 여기 http://blog.naver.com/soar0108
여행자들의 로망, 홋카이도와 아키타의 아름답고도 적막한 설국 풍경을 눈을 만나다, 사랑, 상실, 너 혼자 올 수 있니, 자장가등의 다섯 가지 테마에 담았는데
역시나 눈의 고장답게 사진은 온통 눈.눈.눈이다. 죽음을 앞 둔 사람이 홀로 홋카이도와 아키타 여행을 다녀오다니 ~
생의 마지막 여행으로 선택한 그곳. 무엇이 그를 그토록 사로잡은것일까. 이 책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글쎄 ~
창문밖에도 책속 사진에도 내 마음속에도 한없이 눈이 내리고 있어 무슨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건강한 신체로 잘 먹고 잘 자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내가 그의 마음을 다 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김경주 시인의 서문만 읽어도 저릿저릿 해오는 이야기들.
그의 사진속에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데 그는 그곳에서 사람을 담으면 너무나 그리울 것 같아서 사람을 비우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는데 왠지 그 마음만은 이해할 수 있겠더라.
쓸쓸한 사진은 더 쓸쓸하게, 따뜻한 사진은 더 따뜻하게 보이는 마법같은 책 <너 혼자 올 수 있니>
이석주님의 글과 사진으로 이루어졌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지만 ~ 이것 또한 어쩔수없는 일. 그 아쉬움을 블로그 포스팅으로 대신해야겠다.
되르테 쉬퍼의 내 생의 마지막 저녁 식사를 읽을때도 그랬지만 삶이 죽음으로 가는 과정일지라도 죽음은, 그 단어 만으로도 너무 쓸쓸하고 슬픈 것 같다.
마지막으로 보고픈 사람, 마지막으로 가고픈 곳, 마지막으로 나누고픈 얘기,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 . . .
마지막 . . .마지막이란 건 대체 어떤 느낌인걸까 ???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득한 풍경은 내가 내 발자국과 이별하는 풍경.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오래된 풍경은 불 켜진 창마다 죽은 자와 산 자가 악수하는 풍경.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슬픈 풍경은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랬는데 ~
어찌하면 더 충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
노력해서 될 수만 있다면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많은 공부와 기도가 있어야 할 듯 !!!

사랑
#17
축제의 밤
사람들은 황홀한 눈으로 넋을 잃고 바라봅니다
온몸이 꽁꽁 얼었지만 자리를 떠날 줄 모릅니다
밤과 눈과 불꽃놀이
꿈의 어떤 장면처럼
당신을 생각하는
상실
#20
촛불처럼 고요하게 사라지는 방법은 없나요
문장처럼 지워지는 방법은 없나요
계절처럼 미련 없이 달아나는 방법은 없나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언덕을 오른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번개가 치는 스산한 언덕을 겨우 오르는 그들은 납으로 만든 외투를 입고 무거운 몸으로 느리게 쉬지 않고 언덕을 오른다.
이곳은 연옥이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에게 묻는다. 저들은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저런 형벌을 받고 있는가.
그들은 사치하고 무엇이든 허비하고 낭비한 자들이다.
이 생에서 허비한 것들의 대가를 치르려면 나는 이 우주를 짊어지고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비오는, 눈 내리는 언덕을, 발이 푹푹 빠져들어가는 저 어두운 우주의 허공을 혼자서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시간이 사라진 곳에서 시간을 그리워하며 그대가 사라진 곳에서 그대를 그리워하며.
나는 무엇이 나를 그토록 탐욕스러운 인간으로 살아가게 했나, 진정 무엇을 가졌나 골몰하며 가끔 뒤돌아볼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 왔는지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끝내 알지 못하리.
다음 생에서는 또 무엇을 허비하게 될 것인가.
상실 #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