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곳
고데마리 루이 지음, 김대환 옮김 / 잇북(Itbook)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무엇 하나도,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한곳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이 혹성에 흐르는 시간의 강.
인생도 추억도 그리움도, 필시 사랑조차, 모든 것이 모래 위에 손가락으로 그린 그림문자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늦거나 빠르거나 파도에 씻겨 사라져갈 운명에 있다. 하지만 나는 믿고 있다. 아니 믿고 싶다.
사람의 마음에, 몸에, 수액처럼 흘러들어와 마침내 연륜처럼 새겨지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으로서의 이야기의 힘을. <p.114>
암으로 쓰러져 병상에 눕더니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사람이 되어버린 두 살위 언니가 결혼하지 않고 나은 아이 나나코.
그런 나나코와 함께 사는 가케하시는 어느날 혼다 가오리라는 편집자로부터 이가라시 유이의 소개로 전화드렸다면서 그가 쓴 동화에 삽화를 넣는 일을 부탁하게 된다.
소설가였던 '아라시' 그와 헤어지고 5년. 그가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믿으면 진실이 되는 이야기를.
그의 동화는 코구마 쇼보에서 발행되고 있는 일러스트와 시와 동화의 월간잡지 <이야기 바스켓>에 연재되고, 연재가 끝난 후 한 권의 책으로 간행된다고.
그녀가 아니면 절대로 안 하겠다는 얘기를 듣곤 과연 아라시 답다며 기쁘게 수락하는 그녀.
그리운 아라시의 목소리가, 사랑했던 사람의 영혼이 입자가 되어 날아왔다 믿는 그녀.
아라시와의 오랜 인연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열세살에서 스물일곱살 그리고 서른두살로 옮겨간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밖에 그 마음을 표시할 길이 없는 가시투성이의 엉겅퀴 같았던 그들의 모습에 내 모습이 투영되는건 왜일까.
-지금 갈게. 바람의 말을 타고 그쪽으로 갈게.
- 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텅 빈 그릇이 되어줘. 그러면 넌 그 사람과 평생, 죽을 때까지 사랑하며 살 수 있을 거야.
처음부터 내용물이 꽉 들어 찬 그릇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담을 수 없겠지?
마음속에 사랑이 가득 들어 찬 상태라면 본인은 물론 상대도 괴로울 뿐이야.
네가 그림을 그릴 때도 처음부터 여러 가지 색이 칠해진 종이가 아니라 새하얀 종이를 고르지?
사랑도 마찬가지야. 하얀 부분이 있으니까 그림이 되는 거야. 그릇도 속이 비어 있으니까 쓸 수 있어. 알겠니? <p.245~2466>
소설, 드라마, 영화 등등 무슨 약방의 감초인 양 한두 장면은 꼬옥 등장하는 메뉴들인 엽기, 폭력, 욕설, 살인, 증오, 불륜, 섹스 . . .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끊임없이 자극적인 소재만 찾다 보니 이제는 이런것들이 빠진 이야기는 상상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오죽하면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 일명 '막장 드라마'라는 말이 생겼을까. 실제 자극적인 소재들로 뒤범벅될 수록 시청률은 높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 고데마리 루이의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곳'은 다르다. 어른들이 읽는 동화같은 순수한 이야기랄까 ~
주인공 아라시와 가케하시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배우게 된다.
이야기 속 또다른 이야기인 아라시가 쓰는 동화같은 이야기 <도둑고양이와 유목민>을 통해 그것들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풀어놓는 방식이 맘에 들더라.
순도 100%의 이야기를 통해 온갖 욕심으로 가득찼던 내 마음이 깨끗이 정화된 느낌이랄까 ~
갠적으론 러브레터로 우리나라에 일본 영화 붐을 일으킨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잔잔하면서도 아름다운 청춘물을 보는 그런 기분이라고 하면 다들 공감하실 듯 !!!
잔잔하지만 내 몸과 마음에 수액처럼 흘러들어와 사라지지 않을 진한 여운을 남긴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