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호텔
김희진 지음 / 민음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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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제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자신 있어. 정말이야."

 

고양이 호텔에는 188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열한개의 방이 있는 대저택에서 사는 고요다씨가 나온다.

열한개의 방, 학교 운동장만한 모래로 온통 뒤덮여 있는 마당과 프로방스풍의 돌출 창과 요철 모양으로 마무리된 옥상 난간, 원뿔 모양의 지붕이 얹어진 탑까지~

그녀는 동화속에 나올법한 현대판 공주라도 된단 말인가.

 

<인스토리>에서 난공불락의 고요다란 젊은 여자를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온 강인한. 그녀를 인터뷰해야만 하는 속사정이 무엇인가하고 보니 작년 여름, 한 유수의 출판사가 내건 문학상 현상 공모에서 그녀의 작품이 당선됐다는 것이 아닌가. 국내 문단에 장편 바람을 일으켜 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터라 상금이 무려 1억원.

당선작이 나오지 않을시 다음회로 이월되고 이월에는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것. 상금을 상회할 경우 인세를 지급하고, 영상물 제작과 같은 2차 저작권까지 당선자에게 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때문에 응모자 수는 넘치지만 두 해 동안 당선작은 나오지 않아 상금이 3억원으로 늘어난 상태다. 상금이 많아질수록 기대작에 거는 기대치 역시 높아져 당선작이 나오기는 힘들거라는 예측과 다르게 그녀의 소설이 당선된다. <뒤꿈치>라는 꽤 도발적인 제목의 소설로. 그러니 그 작품과 주인공에 대한 관심이 넘쳐날 수 밖에 없는데 책 날개에 실린 이름과 출생 정보뿐인 약력외엔 감감무소식. 거기에 수상 소감을 겸한 작가의 말 끄트머리에 이 소설은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소설이 될 것이며, 다시는 소설 따윈 쓰지 않을 것이다!라는 선언 조의 문장에 앞으로 기대 되는 작가의 절필 선언은 아이러니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녀에 대한 관심은 날로 높아만 간다. 그런 그녀를 인터뷰하기 위해 기자 생활 8년차 배테랑인 그가 찾아온 것도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코피를 쏟으며 기절한 척 저택에 발을 내미는 데 성공한 그는 고요다씨 인터뷰에 성공할 수 있을까 ??

 

11개의 방이 있는 대저택에서 188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사는 여자. 뒤꿈치란 작품으로 3억원 현상 공모에 당선되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가.

12인용 식탁 위 특별 주문한 3단 고구마 케이크. 호텔 주방만큼 넓은 부엌에서 생일에 자축하는 여자. 게다가 축하객은 고양이들 뿐.

(12년 만에 처음 받는 생일선물. 태극기)

더 이상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매니큐어를 바르는 그녀.

고집스레 자기만의 소설을 쓴 작가였던 엄마 '심호경', 그리고 소중한 부모님의 죽음.

고요다가 사는 도시 인근에서 발생한 10년 넘게 이어저 오고 있는 25명의 연쇄 실종사건.

지하 와인창고 선반 가득 채운 빈 와인병과 각기 다른 남자 이름이 적힌 스티커. 빨간 목걸이를 한 스물두마리의 고양이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그녀. 무엇이든 같이 해 주는 여자라고 적힌 명함.

고양이 꿈을 불러오는 집.

 

이 소설은 굉장히 독특하다. 그 독특한 분위기는 시종일관 이 책을 이어가는 하나의 배경이 되고 어찌보면 유일한 즐거움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른들이 읽는 동화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미스터리하고 내 스스로가 독자가 되어 '고요다' 그녀의 삶이 궁금해 그녀가 털어놓는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니 잡지의 인터뷰 코너, 기자의 뒷얘기를 읽고 있는 듯한 기분까지드니 말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모르겠다. 사실을 말해도 믿지 못하고 본인이 생각하는 대로 그녀의 인터뷰 기사를 싣는 강인한.

바보 바보를 외쳐보지만 그가 바로 나이기도 한 것 같으니 이를 어째 ~

그로인해 자기만의 성에 갇혀 있던 그녀가 세상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게 된 것 같아 조금은 위안이 되더라.

초반 그녀에게 인터뷰를 시도할 거라며 외로운 사람에게 물음은 다른 방식의 친구가 될 수 있다며 연인과 헤어지고 타인에게서 받은 수많은 질문 덕분에 견뎌냈다며 사람들이 얘기를 들어줄 때마다 그들에 의해 조금씩 깎여나간 외로움의 조각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그의 말이 조금은 사실인 것 같다.

 

 

엄마 방에서 나는 책 냄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냄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저 책들이 뿜어내는 냄새는 점점 진해지고 있었다.

먼지 냄새와는 다른 냄새, 그것은 눅눅한 듯 눅눅하지 않은 이상야릇한 냄새였다. 좋은 냄새가 아님에도 그 냄새가 싫지 않다는 게 나는 더 이상했다.

그게 바로 책에서 나는 냄새라는 걸 알았을 땐 뭔지 모를 편안함마저 느껴졌다. 그렇게 책 냄새를 알게 된 날, 나는 엄마 방을 내 방으로 정해 버렸다.

그러고는 예전에도 몇 번 들락거린 방인데 그때는 왜 이런 냄새를 인지하지 못했던 것인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그때 내가 내린 해답은 후각도 성장을 한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몰랐던 냄새에 매료되는 건, 사람이 자라면서 오감도 같이 자라기 때문이다.

입맛이 변하는 것도, 좋아하는 색이 달라지는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그게 바로, 인간이 세상에 진력내지 않고 계속 살아가게 되는 이유였다.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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