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다 햄버튼의 겨울 - 제15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김유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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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깨닫게 될 거야. 지금 네가 겪고 있는 불안이, 아픔이, 절망이 결국 너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얻는게 뭐죠?"

"글쎄다" 아버지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라이프겠지. 인생 " <p.100>

 

정한아님의 달의 바다를 읽고 푹 빠져 그 후 꼬박꼬박 챙겨 읽게 된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들.

장은진님의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를 너무 재밌게 읽어 앨리스의 생활방식과 키친 실험실까지 후다닥 챙겨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0년 10월에 만나게 된 15회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 김유철님의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

10월엔 내가 유난히도 고양이들과 인연이 많은가보다. 어찌된게 읽고픈 책들이 죄다 고양이 관련된 이야기 뿐이니 ~

(행복한 길고양이를 읽자마자 곧장 읽게된 게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이고 이 책을 다 읽을때쯤엔 김희진님의 고양이 호텔을 읽고 있을테니 이게 무슨 인연이란 말인가. 고양이 호텔엔 성과 같은 저택에 무려 고양이 187마리와 살고 있는 비밀스러운 여인이 나오다지 으흐흐 ~

장바구니에 담겨있는 와카타케 나나미의 '네코지마 하우스의 소동'에도 서른 명의 주민과 백여 마리 고양이가 사이좋게 살아가는 고양이 천국으로 관광명소가 된 섬 '네코지마'가 나오는데 ~)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안그래도 얼마전 티비 프로그램 서프라이즈에 길상사가 원래 대원각이라는 고급 요정이었다며 그곳이 어찌 오늘날의 절이 되었는지를 설명해주면서

'김영한' 이라는 여인에 대해 설명하다 그녀가 사랑한 사람이 우리가 알고 있는 시인 '백석' 이라며 그들에 얽힌 안타까운 러브스토리를 들으며

백석 시인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었는데 이 책에서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

 

 

백 육십여페이지의 비교적 짧은 이야기지만 남성이 아닌 여성작가가 쓴 글이 아닐까 싶을만큼 담담하면서도 묘하게 감성적으로 써내려간 글이라 맘에 들더라.

1년반 동거를 했던 연인으로부터 보기 좋게 차이고 다니던 직장생활마저 때려치우고서 반은둔 생활에 들어간 그 앞에 나타난 고양이 한마리.

설기현이 공격수로 뛰었던 울버햄튼의 축구경기를 보고 있다가 배고픈 고양이에게 별 생각 없이 준 게맛살과 삶은 계란을 넣어 만든 샐러드를 준 것을 너무도 맛있게 먹은 모습을 보고서 샐러드보다는 사라다가 햄튼 보단 햄버튼이 발음하기가 편하다는 이유로 녀석을 이름을 사라다 햄버튼이라 부르기 시작한 그.

크크크 웃음이 나면서도 낭만적이란 생각이 든다. 야옹이도 아니고 나비도 아닌 '사라다 햄버튼'이라 불리울 고양이가 또 있을리는 없을테니 ~

그렇게 그 곁에 머물러 있는 유일한 가족이 된 고양이 한마리.

부모님이 이혼으로 어머니와 단 둘이 살다 어머니마저 암으로 돌아가시고 온전히 혼자가 된 그 앞에나타난 고양이 한마리. 그것으로 부족했을까

이혼 후 재혼해서 캐나다로 이민 간 아버지가 예고 없이 찾아 온다. 아버지의 스승 '데릭'이 강원도에서 열리는 통나무 축제에 초청되어 통역을 위해 한달정도 머물 예정이라며 곧 예쁜 여동생이 생긴다는 소식을 전해주는데 ~

말없이 자카르타로 떠나버린 연인, 부모님의 결혼과 이혼, 친아버지의 존재에 고양이까지 !!!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어쩜 이리도 비밀스럽고 미스터리한지~

세상에서 제일 비극적인 인물이라고 해도 부족할 것 같은데, 나같으면 방황을 해도 열댓번을 했을 상황에서도 시종일관 쿨한 그의 모습이 못내  신기하기만 하더라. 사람이 성격은 이렇게나 환경적인 요인이 크나보다 ~ 그 긴장감 가득한 분위기가 좋아 페이지가 줄어드는게 못내 아쉬웠던 이야기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

생과 사, 만남과 이별의 갈림길. 그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이 무언지를 조용히 일러주는 것 같다.

 

 

"폴 오스터가 <달의 궁전>에서 말했잖아. 만년필의 잉크가 다 떨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야."

나는 사라다 햄버튼을 품안에 안은 채 녀석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절망하든지 아니면 새롭게 시작하던지 . . . 적어도 너와 난 새롭게 시작하는 쪽을 택하고 있는 거야. 알겠지 ?"

그때 휴대폰의 진동이 다시 전해졌다. 나는 휴대폰을 열면서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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