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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슬립
폴 트렘블레이 지음, 이소은 옮김 / 비채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관점을 바꾸면 탐정일이 쉬워지는 법이다. 관점을 바꾸는 게 엄청나게 힘들뿐이다. <p.190>
하드보일드 미스터리의 고전 레이먼드 챈들러의 <빅 슬립>에 바치는 최고의 오마주 !
리틀 슬립은 레이먼드 챈들러를 몰라도 빅 슬립을 몰라도 잼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실제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나도 잘 모르는 ;;;)
8년전 타이어가 터지는 사고로 소중한 친구 '조지'도 잃고 망가진 얼굴로 괴물이 되어버린 것도 부족해 기면증이란 수면장애에 걸린 '마크 제네비치'는 탐정면허와 기면증과 더불어 혼자 살고 있다. 가끔 오스터빌 도심에서 사진관과 골동품 가게를 하는 그의 어머니가 찾아와 살펴주는 정도인데 그런 그에게 탐정일이라곤 족보도 조사하고, 버려진 물건도 찾아주고, 잃어버린 주소도 찾아주는 등의 비교적 간단한 일 뿐이다. 이 지역 반짝 스타이자 <아메리칸 스타>의 결승 진출자이며 서퍽 카운티 지방 검사의 딸 '제니퍼 타임스'가 찾아와 누가 내 손가락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내면 5만 달러를 주겠다는 제의를 하기 전까지는 -
그는 자신의 최고 단점인 기면증을 물리쳐가며 의뢰인의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
끝없는 나락으로 빠져드는 잠, 착각과 환각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어떤게 꿈이고 현실인지 모를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 탐정 본인은 물론 나까지 잠에서 깨어 일어날때마다 내용이 바뀌어 있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몰라 무슨일이 일어났고 무슨일이 일어나지 않았는지, 또 그게 무슨 의미를 갖게 되는지를 한참 생각해보게 만들더라. 그래서 순식간에 이야기를 읽어내려갈 수 없었고, 곰곰히 생각하는사이 내 스스로가 기면증에 걸린 탐정이 된 것 마냥 모든 사실을 하나하나 퍼즐 맞추듯 읽어나가면서 독서의 기쁨을 한껏 즐길수 있었다고나 할까 ~
예전에 기면증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있어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기면증'은 이유없이 졸리고 무기력감을 느끼는 증세로 환각, 수면 마비, 수면 발작 등의 증상을 보이는 신경정신과 질환이다. 착각과 환각에 빠지는 것도 증세의 일부라고.
성인의 0.02~0.16%가 이 병을 앓고 있다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청소년기 또는 초기 성년기에 시작되며 대부분 30세 이전에 시작된다고 한다.
심리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현대 의학으로는 완치가 불가능한 병이니 더 안타까울 수 밖에 !!
책 내용중 어머니와의 대화에서도 '아무도 내게 의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다며 게으른 사람이라거나 묘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원하면, 내가 정신만 차리면 잠들 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기면증이라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가 얼마나 깊은지~ 차가운 시선을 피해 집안에만 틀어박힐 수 밖에 없는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안쓰럽더라. 이것이야말로 기면증에 대한 우리 모두의 편견이 아닐까 싶은 ~
눈꺼풀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만큼이나 무겁고 두껍게 느껴진다. 내 세계는 다시 어두워지고 있다.
하지만 흑백 사진이 벽에 걸려 있는 게 보인다. 어머니는 저 사진들을 떼어놓지 않았다. 한 장도.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잊지 않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어머니가 수집한 기억들을 제자리에 보관하기로, 어머니 인생의 기면증에 대항해 싸우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어머니가 성공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노력은 높이 사주고 싶다. <p.379>
기면증 걸린 탐정의 고군분투 사건 해결기. 너무나도 그다운 마무리 인 것 같아 흐뭇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인 탐정일은 물론 운전도 하게 됐으니 앞으로도 세상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딛는 모습을, 사람답게 살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