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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 대하여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너의 행복만이 너에게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에 대한 복수야 <p.161>
주위 사람들에게 빌붙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녀는 순순히 취직하고 결혼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가족의 과거로부터 혼자만 도망치면 안될 것 같은 기분. 누군가를 내 인생에 끌어 들이기가 무섭고,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싶지 않다 말하는 그녀에게 엄마의 쌍둥이 여동생인 이모 '아쓰코'의 아들 '쇼이치'가 찾아온다.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유미코를 찾아 돌봐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하며 이모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기를 꺼내 들려주는데 최면에 걸렸다는둥 아주 소중한 것을 망각한 탓에 떠돌아다니고 있을거라는둥 어린 시절의, 많은 일들이 벌어지기전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쇼이치의 도움을 받으란 조금은 황당한 말들이 담겨있다. 실제 그의 도움을 받아 과거와 마주할 준비를 하는 유미코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조금은 충격적이다.
토리노에 있는 마녀 학교에서 공부하고 와서 백마녀가 된 할머니. 강령회가 실패로 끝나 이상한 암시에 걸려 집단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그 충격으로 엄마와 이모는 클리닉 센터에서 재활치료를 받게 된다. 종교 비슷한 특수단체 교주의 딸인 엄마와 이모라서 그랬을까 ? 엄마와 이모가 자매의 연을 끊는 사건이 생기고, 마술을 사용해 좋지 않은 방법으로 장사해 떼돈을 번 엄마는 강령회를 하는 도중에 이상해져서 아빠를 칼로 찌르고 제 손으로 목을 그어 자살하고 만다.
그 후 유미코는 유산도 제대로 물려받지 못한 채 모두와 인연을 끊고 외로이 지냈던 것.
사람이 살아가면서 아무것도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 . .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동시에 잃은 것도 감당하기 힘든 고통인데 그것이 교통 사고나 강도등의 상해 사건이 아닌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의 의해 일어난 일이니 누굴 탓할 수 있으랴 ~
안으로 밖으로 죄다 상처받을 수 밖에 없었던 유미코의 삶을 생각하니 그녀의 마음이 어땠을지가 그대로 전해져오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누군가 나를 생각해 준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요. 나는 그것으로 충분해요. 행복해요. 이제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아요. <p.47>
이제는 유명 작가들의 이야기를 책이 아닌 모니터를 통해 만나게 되는 일들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신기하기만 하다.
단편이라면 모를까 장편의 글을 모니터로 읽는 것이 익숙치않아 책으로 나올때까지 기다렸는데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나에게 힘이 되줄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리운 때에 손에 든 이 책. 휴일이 코앞인 비가 오는 토요일 밤에 읽게 된 것이 참 좋았던 것 같다. 그녀의 글은 이성보다는 감성으로 읽는터라 책을 읽기전에 분위기부터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
첨엔 읽는 나도 이해못할 소리들을 늘어놓아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이것 또한 요시모토 바나나씨의 매력이라 생각하고 부지런히 읽었다는 ~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가 더 기대됐던 것 같다.
중간중간 결말을 암시하는 힌트를 일찍 발견한탓에 결말 또한 엉뚱하리라 예상했지만 이건 ~~
그 덕에 큰 재미는 느끼지 못했지만 그녀 나름의 잔잔하면서도 따뜻한 문장들에 맘이 따스해진 주말 밤이었던 것 같다.
이백여 페이지의 얇은 책이라 언제나 아쉽지만 신간 소식이 들리면 또 집어들 수 밖에 없으리란걸 잘 알기에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슬프고 애틋한 이야기라 절대 밝은 내용은 아니지만 이렇게 우울한 시대에는 이런 분위기의 소설에 잠기는 것이 오히려 치유가 되리라 믿고 썼다는 그녀의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토대란 게 뭐죠?"
"유미코 씨나 다카하시 씨가 갖고 있는 것, 그리고 나 역시 갖고 있었던 것이죠."
구마 씨가 말했다.
"바로 이 세상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힘이에요.
누군가의 품에 꼭 안겨 본 경험, 귀염받고 자란 기억. 비 오고 바람 불고 맑게 갠, 그런 날들에 있었던 갖가지 좋은 추억. 부모가 맛있는 음식을 차려 주었던 일, 생각난 것을 얘기하고 받았던 칭찬, 의심의 여지없이 누군가의 자식이었던 것, 따뜻한 이불 속에서 푸근하게 잤던 잠, 자신이 있어도 좋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면서 이 세상에 존재했던 일. 그런 것들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으면 새로운 사건과 부딪칠 때마다 그것들이 되살아나고, 또 그 위에 좋은 것들이 더해지고 쌓이고 하니까 곤경에 처해도 살아갈 수 있어요. 토대니까, 어디까지나 그 위에서 무언가를 키워가기 위해 있는 거니까." <p. 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