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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거타임
오가와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예전에는 선샤인마켓이 단순한 마켓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식욕이 이상해진 후, 나는 선샤인마켓이 특별히 아름다운 마켓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먼저 밤의 조명이 선명했다. 그저 화려하게 반짝거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격조 높은 빛을 뿌리고 있다.
나는 도로 맨 끝에서도 선샤인마켓의 불빛을 찾을 수가 있다.
그리고 진열대의 물건이 언제나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다.
통조림이며 우유며 생선이며 야채 같은 식료품도 손님이 제일 앞의 물건을 집으면 재빨리 보충된다.
가게 안으로 한 걸음만 들어서면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그 진열대의 완벽함에 압도된다.
선샤인 마켓의 상품들은 움찔할 정도로 의젓한 시선을 내게 던진다.
절대 강요하는 법 없이, 말끔하게 정렬되어 허리를 곧게 편 그 시선을 나는 도저히 무시할 수 없다. <p.47~48>
음식재료를 사기 위해 일주일에 서너번씩 마트를 들리면서도 한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내가 필요한 것만 골라 재빨리 계산하고 나가고싶단 생각뿐이었는데 이 책을 계기로 그토록 내가 뻔질나게 들락거린 마트가 새롭게 보이니 아니러니하다.
하지만 주인공 가오루에게 마켓은 특별하다. 오직하면 '선샤인마켓 안에서 식사하고 자고 생각하고 웃고 외로워하고 싶다. 오로지 그 생각뿐이다'라고 당당히 얘기하겠는가 -
오가와 요코의 슈거타임은 3주전부터 식욕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며 어느 정도 예사롭지 않은가를 확인하기 위해 먹은 것을 목록으로 만드는 기묘한 일기를 쓰는 가오루의 이상하면서도 평범하고 그래서 예사롭지 않은 일상을 잔잔하고 담담하게 써내려간 이야기다.
달콤한 제목과 다르게 조금은 쓸쓸한 느낌이 강한데 원인 불명의 식욕증세에 매번 먹을것만 생각하는 그녀에 대한 안타까움 ? 뇌하수체에 문제가 생겨 더이상 크지 못하는 병에 걸린 남동생 고헤이의 쓸쓸하고 조용한 눈빛 ? 언제까지고 고헤이의 '몸'을 포기하지 못하고 별별 방법을 동원해 치료해주고픈 엄마의 마음? 그것도 아니면 치료를 위채 찾은 병원에서 가련해서 눈물이 날 것 같고 서로가 서로에게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 '그녀'를 만나 그녀와 함께 러시아에 유학간다는 요시다씨 때문일까나 ?
"설탕 과자처럼 부서지기 쉬워서 더욱 사랑스럽고, 그러나 너무 독점하면 가슴이 아파지는 것,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이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닐까?" <p.186>
찬란하게 빛나는 젊은날. 언제나 시작만 존재하고 끝이란게 없을 것 같은 그런 시간 -
책 속 주인공들처럼 느끼지 못하는 데 아주 능숙했던 그 시간들의 흐름이 고스란히 느낄수 있는 나이가 됐다는데서 오는 쓸쓸함이려나?
읽다보면 그 미묘한 느낌의 차이를 알 수 있을 듯 ~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있다.
시간이 사락사락 귓가에서 쏟아져 내리고, 나만 어둠 속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밤이다.
자려고 하면 할수록 시간이 지나는 소리가 선명해져 나를 잠에서 멀어지게 한다.
그런 밤은 어둠 속에서 여러 가지 것이 보인다. 커튼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가녀린 달빛이며, 허공을 떠도는 어둠의 입자며, 부예진 시트의 흰색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 것을 보고 있으면 머리가 점점 맑아지고 손가락 끝이 선뜩해진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잔 적이 있긴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는 것을 포기해 버리면 마음이 조금 느긋해진다.
침대에서 뻗쳐 어둠 속에서 손톱 모양을 하나하나 확인하기도 하고, 창에 비친 바깥 세계의 빛이 변해 가는 모습을 즐기기도 한다.
잔잔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섬세한 문체에 자꾸만 시선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