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먼트
혼다 다카요시 지음, 이기웅 옮김 / 예담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병원에서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는 간다는 어느날 병원을 떠도는 이상한 소문을 듣게 된다. 필살청부업자 전설이라고 죽음이 임박한 환자의 소원을 이뤄주는 사람이 있다며 소원은 딱 하나, 환자가 죽기 전에 반드시 이뤄준다는 것이다. 장기간 입원한 말기환자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소문이라고 하니 귀가 쫑긋해지는 내용이 아닐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죽음을 앞둔 순간, 당신은 무엇을 소원하겠습니까?란 문구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얼마 뒤 '간다'는 죽음을 찾아 헤매는 듯 말기 입원환자들 사이를 전전하는 소문을 듣게 되고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얘기지만 정말 있다면 좋겠다는 할머니의 부탁을 받고 등록금도 벌겸 소소한 부탁을 들어주게 되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100만엔이 조금 넘는 돈이 은행계좌에 들어와있는 것을 확인하곤 남은 돈을 돌려드릴 수가 없게 되  네 번의 일을 더 해결하기로 한다.

그렇게 진의를 알 수 없는 소문의 주인공인 흑의의 남자가 어느 순간 쥐색 작업복의 청소부로 바뀌면서 그들의 소원을 해결해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모먼트 '얼굴, 가정법, 반딧불이, 마지막 순간'이라는 네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얼굴'에서는 후두암으로 생이 얼마 안남은 304호 사에구사 할아버지의 소원, '가정법'에서는 심장이 안좋은 열네 살 이마이 요시코의 소원을, '반딧불이'에서는 유방암으로 입원했다 수술이 성공해 퇴원했던 우에다씨가 암이 재발해 병원을 찾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마지막 '마지막 순간'에서는 대학교에서 주최하는 교환 유학생 시험에 장난삼아 응모했다 떡하니 합격해 유학을 가게 된 간다가 마지막으로 해결하게 되는 사건으로 병원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특실에 입원해있는 아리마씨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죽음을 앞둔 환자의 소원을 들어주는, 흑의를 입고 한밤중에 병실에 찾아온다는 소문의 주인공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모든 이야기는 결국 이 마지막 편을 위한 전초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병원이라는,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특수한 배경을 기본으로 하는지라 죽음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법도 하건만 매번 가슴 한쪽이 뭉클해져온다.

특히나 '가정법'에서 심장이 안좋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그녀에게 작년 가을, 수학여행에서 딱 한번 키스를 했던 상대, 그를 그리워하다 죽음을 선택한 친구의 이야기는 너무나 안타깝더라.

 

"에미에게는 화가 나요.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살 수 있을 텐데. 대학교에도 갈 수 있었을 텐데. 성인식도 치를 수 있고, 운이 좋으면 결혼식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아무리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런데도 전부 깨끗이 내다버렸어요. 에미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슬픈 마음이 들기 전에 미치도록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내 앞에 있으면 다시 한 번 죽이고 싶을 정도로. 의미 없는 분풀이겠죠.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의식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럽고 질투 나서. 저를 보고 동정하는 사람들에게, 당신들도 언젠가는 죽어요, 라고 쏘아붙이고 싶어서. 하지만 아무한테나 그런 말을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에미가 자살했다는 걸 알고 그 사람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그 사람이라면 당신도 언젠가는 죽는다고 말해도, 당신도 나와 똑같다고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만큼 의미없는 없는 분풀이죠."<p.160>

 

책을 읽는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생각이 있었다.

죽음을 앞둔 순간, 당신은 무엇을 소원하겠습니까?에 대한 답이다. 그 순간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 알리가 없는 . .

어짜피 죽을 때가 되면 싫어도 알게 된다는 간다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제 곧 당연하게도 겨울이 찾아들었다가 봄이 오리라.

계절이 지나는 가운데 아리마 씨는 사라지게 되겠지. 그럼에도 당연하게 여름이 오면 다시 가을이 찾아와, 몇 번이고 당연하게 되풀이되는 계절 가운데 언젠가 나도 사라지게 되리라. 머지않아 죽어가는 인간이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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