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어도 돼?
나카지마 타이코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베란다에 빨래를 너는 일 하나에도 온갖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집. 집세가 비싼 도쿄로 나갈 엄두는 나지 않고, 가나가와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출퇴근이 문제, 빨래 너는 일 하나 때문에 근처 고만고만한 방으로 옮기는 것도 의미없는 것 같아 5년째 살고 있는 이 집. 여기서 평생을 마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지라 마흔이 되기 전에는 반드시 이곳을 나가리라 다짐하게 된다. 쓰레기봉투를 들고 현관은 나서 계단을 내려가다 넘어져 허리를 다친 마리는 여기서 죽는것만은 싫다면서 이사는 둘째치고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회사 사장이자 사촌인 유키코에게 얘기하게 되고, 그녀의 발빠른 주선으로 이런저런 남자를 만나게 되지만 그것도 쉽지가 않다. 그러던 중 토모코 이모가 이즈에 있는 실버타운에 들어가게 됐다면서 맨션을 마리에게 준다는 얘길 듣게 되면서 집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고 주차장으로 쓰고 있는 한노우의 땅을 떠올리며 본격적으로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자 하나도 변변히 못 찾는 여자가 집이라니 ~ 그녀의 집짓기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있을까 ?

 

그럼, 당사자라면, 여기에 어떤 집을 짓고 싶은데요?

세 자매는 얼굴을 마주보았다. 글쎄 . . . 하며 모두 표정이 변하고, 문득 떠오른 생각이라도 좋으니 말해보라고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라면." 토모코 이모가 부지를 둘러보며 말했다.

북유럽 풍의 난로가 있는 집이면 좋겠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멋있게 노출 콘크리트 공법으로 마감하고, 대면식 주방과 공기 방울 욕조가 있는 집이 좋다는 노리코 이모, 엄마는 염색 같은 것도 할 수 있게 아틀리에가 딸린 집을 전부터 갖고 싶었단다. 유키코는 지중해 풍의 하얀 벽에 앤티크 창호가 붙어 있는 등 세세한 부분에 공을 들인 집이 좋을 것 같다고 한다. 집은 아무래도 좋지만 퍼터 연습을 할 수 있는 잔디밭이 필요하다며 아버지가 매듭을 지었다.

한 바퀴 발표하고 나자 다섯 명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각자 자신의 집을 그려보고 있는지, 진지하게 부지를 바라보고 있다.

집을 짓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꿈인 것이다. 인간이 품는 희망 중에서도 최고의 것인지 모른다. 일부러 다들 두 시간씩이나 찾아 온 것도, 한가하거나 내가 걱정된다거나, 그런 이유만은 아니다. 기대하고 와 있는 것이다. 비록 남의 집이어도, 꿈이 있으니까. <P.138>

 

나카지마 타이코의 지어도 돼?는 직장 생활도 재미없고, 남자 친구도 없는 삼십대 여자 '마리'의 행복한 집 짓기를 잔잔한 문체로 써내려간 책이다.

집을 짓는다니 참 팔자좋은 소리구나 싶지만 책을 읽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이런 상황에 놓인 마리가 마냥 부럽기만 하다.

대출을 끼고 살 수 있는 집이래봤자 오래된 집이거나, 마당 딸린 연립주택을 토막낸 집정도. 크기가 괜찮으면 거리가 멀고 또 살고 싶을 만큼 센스있는 집이 없어 고민하던 그녀가 작아도 내 것이라는 만족감, 내가 있을 곳이라는 막연한 기분을 쫓아 집을 지을 생각까지 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에 공감이 갔다고나 할까.

집을 갖고 싶다. 그 말을 입밖에 내버린 그 날 밤부터, 그 생각이 머리에 떠나지 않는 마리. 그녀의 그 맘을 ㅎ

양복을 만들때 우선 그 사람의 신체치수를 알기 위해 치수를 재듯이 집을 짓는 경우에도 그 사람을 아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가족 구성원, 내진성, 유행양식이 아니라 '어떤 인간인가'하는 지점에서 출발하는, 후쿠시마 씨의 집짓기 스타일도 넘 맘에 든다. 이 부분에서는 결혼못하는 남자의 건축가 구와노 신스케씨가 생각나더라. 집을 지을때 주방에 비중을 많이 두는 그의 스타일이 나랑 잘 맞았던 기억이 나서 ~

책을 읽는 내내 마리의 집짓기 프로젝트에 맞춰 나의 상상도 끝없이 펼쳐지는 게 나에게도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환한 햇살을 받으며 넓디넓은 주방에서 맛난 음식 실컷 해먹을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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