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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1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이 선생의 이야기를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 생각하고 듣는 것이 이곳의 규칙이었다.
본인이 '실제로 체험했던 일'이라고 주장하는 마당에 그 말을 의심하는 것은 금물이었다
우리는 아무도 사실을 듣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재미만 있으면 뭐든 상관없었다.
술안주가 될 만한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선생을 매주 초대하는 것이었다.
목에는 유이 가사, 등에는 오이 상자, 금강 지팡이를 들고 허리춤에 나각을 든 남자. 이 남자가 행각승 지장 스님이다.
토요일밤 '에어프릴'이라는 스낵바에 모여 지장스님이 일본 전국을 방랑하며 맞닥뜨린 다양한 사건을 듣는 모임이 열린다.
지역에서 으뜸가는 신사복점 큰아들답게 트위드 스포츠채킷으로 쫙 빼입은 '네코이', 돌팔이로 이름 높은 완벽한 대머리 치과의사 '미시마', 지역출판사에서 책을 두어권 낸 자칭 풍경 사진작가지만 실제로는 이 지역에서 하나뿐인 사진관을 경영해 생계를 유지하는 도코카와 부부, 비디오 대여점을 운영하는 전직 영화청년인 나 '아오노 료지' 그리고 작은 스낵바 '에이프릴'의 주인이자 솜씨 좋은 바텐더인 마스터, 이상이 토요일밤 '에이프릴'에 모이는 얼굴들이다.
모두 모인 가운데 옆자리에 앉은 네코이가 지장스님이 좋아하는 담배 '던힐'에 불을 붙여 쓰윽 내밀고, 그가 좋아하는 오렌지색 칵테일인 '보헤미안 드림(방랑자의 꿈)'이 비워지면 이야기는 시작된다 -
느긋히 여행다닐 기회가 없어서인지 기행 추리소설에 푸욱 빠져 지낸다는 도코카와의 얘기에 지장스님이 살인과 열차와 형사라는 소재만으로 즉각 한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 이야기가 '지방 철도와 신데렐라', 학교 축제에서 가장행렬을 한다고 배트맨 의상을 빌리러 간 아들에 대해 얘길 하는 치과의사 미시마와 도코카와 부인의 얘길 듣고서 들려주는 배트맨과 행각승, 판다와 스모선수가 나오는 기묘한 이야기가 '저택의 가장파티', 기묘한 이야기라는 술안주를 앞에 두고 별난 이야기 기이한 사건 이야기가 좋겠다는 도코카와 부인의 장단에 맞춰 절벽에 사는 수상한 종교가가 살해단 사건에 대해 얘기하는데 그것이 '절벽의 교주', 티비 프로그램 '서스펜스풀 극장'에 대해 얘길 하다 트릭의 엉성함에 실망했다는 얘길 듣고 3년 전쯤 호쿠리쿠를 여행하다 우연히 참석한 만찬회에서 그와 비슷한 사건에 말려들었다면서 들려준 이야기가 '독 만찬회', 초밥집 앞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바람에 토요일밤의 모임에 살짝 늦은 도코카와 부인의 얘길 듣고 전직 야쿠자가 총을 맞고 죽은걸 발견한 적이 있다며 들려주는 얘기가 '죽을 때는 혼자', 땀을 많이 흘려 여름엔 에어컨을 틀고 살아야 하는데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는 남편 때문에 괴롭다는 도코카와 부인의 얘길 듣고 에어컨을 싫어하는 사람이 연관된 살인사건에 휘말린 적이 있다며 그 범인이 꾸민 계략이 참 별났다며 들려주는 이야기가 '깨진 유리창', 눈오는날밤의 미스터리를 이야기하다 눈이 쌓인 길의 기묘한 발자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살인사건 현장에 남아 있던 기묘한 발자국을 본적이 있다면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박사의 승천'이다.
보통의 미스터리 소설을 읽다보면 트릭도 어렵고 눈치챌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아 추리를 하기 보다는 탐정이 풀어놓는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편인데 이 책은 다른 책과 다르게 나 스스로 부지런히 추리를 해보게 되더라. 그래서 더 재밌게 느껴지지 않았나 싶다.
갠적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타일의 이야기는 '독 만찬회'다. 자기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어리석은 인간의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통쾌하다는 ~
이야기의 끝부분에 조금씩 나오는 마스터의 냉철한 한마디(원통을 원투하다라는 말장난이며, 야쿠자 느낌을 내기 위해 간사이 사투리를 썼다는둥)로 인해 마지막 프롤로그 부분에 마스터가 지장스님의 트릭을 깨고 짠 나타나 주목을 받고 급부상하는 캐릭으로 등장하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나 내 상상으로 끝났다는 ~ ㅎ
이러니 내가 토요일밤 모임의 일원이었더라도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아닌지 의심하는 버릇으로 인해 모임이 깨졌을지도 모를일;;
저택의 가장파티에서는 배트맨과 다스베이더의 의상이 어떻게 다른지 검색해보기도 했고 ;;
절벽의 교주를 읽으면서는 실제 도를 아십니까에 빠져 한바탕 난리가 났던 친구가 생각나 안타깝기도 했고
깨진 유리창을 읽으면서는 세계 3대 진미중 하나가 뭐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찾아보았다. (세계3대 진미는 푸아그라, 트뤼플, 캐비어)
궁금증의 절정은 덴마 박사의 승천을 읽으면서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비디오 대여점을 운영하는 아오노 료지씨가 들려주는 눈오는 날 밤의 기묘한 이야기.
언뜻 보면 편자를 붙인 말 발자국처럼 보이지만 네 발로 걸은 자취가 없고 그렇다고 사람처럼 직립해서 두발로 걸은 것도 아닌, 그저 말발굽처럼 생긴 자국이 한 줄로 이어져 있을 뿐인 그 발자국의 주인이 누구인지 정말 궁금해지더라라는 ;;;
다른 이야기는 죄다 검색해보면 금방 찾을 수 있는데 이건 그런 게 아니라 그런지 넘 괴롭더라.
덕분에 이야기는 내 머릿속에서 계속 이어지는 느낌이랄까 -
명탐정 지장스님, 거무스름한 얼굴의 미스터리의 천사 '행각승 지장스님'의 이야기를 다시 만날 수 있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