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8월

문은 아직 닫혀있는데를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시모치 아사미의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가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말, 동기에 대한 여러 아쉬움을 뒤로 하고 첫장에 범인과 범행을 완벽하게 노출시키면서 완벽한 밀실살인을 성공시킨 점, 열리지 않는 문을 앞에 두고 펼쳐지는 숨 막히는 두뇌 싸움이 너무나 흥미진진했기에 그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이 책을 집어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책 또한 주인공은 첫장부터 살인을 하려고 한다고, 한명도 아닌 자그마치 세 명, 즉 연쇄살인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힌다. 평범한 사회인이 살인을 해야겠다고 계획을 세우게 된 이유들은 나중에 쫘르륵 밝혀지는데 이해가 될 듯 말 듯한 문은 아직 닫혀있는데 와 다르게 이것으론 부족하잖아 ~라고나 할까 ;;; 인생을 끝장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살인을 해야할 일이라는 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게 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살인자란 원래 비겁하고 비참하고 추악해서 결국에는 패배하기 때문에 일부러 그런 식으로 쓰고 싶었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

 

나미키는 마리에, 유키, 히토미등 세사람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자신은 절대 혐의를 받지 않도록 철두철미하게 준비된 살인 계획을 세우는 게 관건. 파멸을 피하려면 이들을 죽여야만 하는데 계획을 눈치챈 아카네가 이를 막으려고 움직이면서 사태는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치닫는데 . . .

 

이들은 모두 아버지가 무고한 죄로 체포되었다가 누명이 풀리지 않은 채 구치소에서 사망했다. 그로 인해 이들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고, 나미키를 비롯 아케네, 유코, 시미즈 고헤이, 모토오카 와타루 일행은 원제 피해자 지원단체의 중심인물로 주위에 쏟아지는 정의란 이름의 폭력으로부터 소녀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용의자로 보도되는 순간 이미 '범인'이 되버리는 현실. 혐의가 풀린 뒤에도 세상은 이들에게 냉정하기만 하다. 그때 이들이 아버지의 혐의를 풀어주고 지원해주는 높은 존재가 아니라 같은 편이라는 신뢰를 보여주는데 그 중에서도 의사인 유코와 임상심리사인 아카네가 중심역할을 하게 된다. 상처를 받고 절망의 나락에 떨어진 사람이 얼마나 강하게 일어설 수 있는지 보고싶었기에 특별 프로그램을 짜서 이들의 가능성을 더욱 넓혀주는 카운슬링을 했는데 세상 사람은 모두 적이다, 적은 쓰러뜨려야 한다는등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반 카운슬링에서는 절대로 입에 담아서는 안되는 말로 이들 세 사람의 마음속에 괴물을 키우게 된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여전히 설득력이 떨어져 후반부로 갈수록 집중하기가 힘들었지만 호기심에 끝까지 읽어나갔는데 이 황당함이란 ;;

마지막 "여동생을 부탁해" 이 멘트는 더더욱 아닌듯 ;;;; 넘 이기적이지 않은가 ~ 다른 사람의 목숨은 아랑곳않더니 고향에 있는 회사에 취직한 여동생. 앞으로 좋은 혼담도 들어올텐데 오빠가 살인자라면 혼인이고 뭐고 다 끝이라며 어떻게든 여동생을 구해야 한다고 이런 멘트를 내뱉다니 ~ 솔직히 어이없다.

살인이 너무나 쉽게 진행되는 점 자체가 실망스럽긴 하지만 범죄 전후 상황이나 범죄 현장에 대한 치밀한 묘사를 통해 범인의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으로 이야기 중반까지 오싹오싹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든 것은 작가의 실력일 듯 싶어 이 부분에는 박수를 보낸다. 

 

오키나와 나하 공항에서 승객 240여명을 태운 여객기가 납치되는 극한의 폐쇄상황에서 펼쳐지는 달의 문이 출간예정이라니 그 작품에 희망을 갖고 기대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