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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소녀
델핀 드 비강 지음, 이세진 옮김 / 김영사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초음속 비행기를 띄우고 우주에 로켓도 발사한다. 머리칼 한 올이나 미세한 살갗 부스러기 하나로 범인을 잡아내고,
3주나 냉장고에 처박아두어도 주름 하나 잡히지 않고 싱싱하게 유지되는 토마토를 만들어내며, 손톱만한 반도체 칩에 수십억 가지 정보를 저장한다.
우리는 거리의 사람들이 거리에서 죽어가도록 그냥 내버려둔다 [P.90]
델핀 드 비강의 장편소설 '길 위의 소녀'는 2008년 프랑스 서점 대상 수상작으로 두 소녀의 성장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책에는 두 소녀가 나오는데 (원서 제목은 No ET Moi로 '노와 나) 아이큐 160에 성적은 늘 일등을 해 월반을 할 정도로 뛰어난 두뇌를 가진 천재소녀 '루 베르티냑'과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는 노(NO)
두 사람의 접점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두 소녀의 만남은 머랭 선생님의 발표 수업의 주제로 얼렁뚱땅 '노숙자'라는 말을 내뱉으면서부터 시작된다.
노숙하는 젊은 여자의 여정을 따라가보려고 한다고 집 없이 거리에서 젊은 여자를 인터뷰 할거라 말하는 그녀. 실제 떠도는 여자들의 숫자도 늘고 있고 누숙자들의 연령도 점점 어려지고 있어 루의 주제에 큰 관심을 보이는 선생님.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 때문에 학교를 빠질 이런저런 궁리를 하는 루의 모습이 천진난만하다 생각되지만 루는 기차역에서 노숙하는 '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과제를 성공리에 마친다. 그러면서 어린 소녀의 눈으로 보여지는 모순투성이 부조리한 사회. 이상과 현실의 격차에 대한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몰리 아저씨 이야기를 하면서 개는 거두어도 노숙자는 거두지 않는다며 우리 모두가 한집에 한 사람씩만 노숙자를 받아들인다면, 한 사람이 한 명만 맡아서 돌보기로 결심한다면, 더도 덜도 말고 딱 한 명만 도와주고 함께해준다면 거리에 나앉는 사람들이 많이 줄지 않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소녀.
'사물은 존재하는 바로 그대로다'라는 우리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많은 것들에 대해 얘기하는 소녀의 생각과 시선에 나 역시 그런 생각을 안해본 것은 아니지만 실천에 옮기는 것은 너무너무 미미하다. 후원 댓글에 글을 적어 목표액을 만들수 있게 클릭을 하고 도토리나 콩으로 조금씩 기부. 거리의 몸 불편한 할머니 할아버지께 작은 모금 정도랄까 ;;;
기부와 봉사활동에 굉장히 인색한 모습을 보였던 나. 내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더라.
동생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져 끝없는 어둠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엄마가 노와 함께 살면서 서서히 변화되지만 나아진 줄 알았던 노의 생활은 처음으로 되돌아가 결국 어떤게 진실인지 알지 못하고 헤맨다. 노숙자들을 믿으면 안되다고, 그럼 그렇지라며 보호시설에 보내야 한다고 말할 때에도 노에게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루. 어린왕자의 길들이기 장면을 떠올리며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너는 나에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될 거야 라는 말 그대로 항상 노를 믿고 의지했던 루의 마음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어쩌면 길들여야 하는 누군가를 찾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는 그 말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른이 읽어도 좋지만 한창 생각이 많을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고등학생이 읽으면 아주 좋을 소설.
누구든 사랑한다고 말하고 꼬옥 껴안아주고픈 소설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