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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7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평점 :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누구나 좋은 대접을 받으면 은혜를 느끼고, 은혜를 알면 보은도 하고.
반대로 악하게 대접받으면 원한도 가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앙갚음도 하지. 사람의 경우에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야.
동물이나 수목은 그런 짓은 하지 않아. 그러니 소중하게 아껴주면 좋은 일도 있기 마련이야. 소홀하게 다루면 저주도 내리고. <p.424>
책을 받아들자마자 신나게 읽어내려간 쿄고쿠 나쓰히코의 항설백물어 -항간에 떠도는 백가지 기묘한 이야기는 미야베 미유키의 미야베월드 제 2막 시리즈(외딴집,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흔들리는 바위, 괴이) 와 비슷한 구석이 많은 것 같다. 미야베 미유키, 오사와 아리마사와는 같은 사무실을 쓰는 절친한 동료 사이로조 잘 알려져 있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전혀 낯설지 않더라는 ~ 오히려 반갑다는 느낌이 더 컸던 것 같다.
아즈키아라이, 하쿠조스, 마이쿠비, 시바에몬 너구리, 시오노 초지, 야나기온나, 가타비라가쓰지 등등 목차를 읽어도 어떤 내용인지 당췌 설명안되는 제목들 뿐이지만 페이지를 넘겨 이야기가 시작되기전 삽화와 그 밑 짧을 글을 읽다보면 대충 어떤 내용인지 짐작케 한다.
일본소설을 좋아해 굉장히 많이 읽은 나도 읽다보면 어려운 표현들이 많이 난감해하긴 했는데 그런것만 뛰어넘는다면 재밌는 책읽기가 될 듯 ~
첫번째 이야기 '아즈키아라이'에서 샛길로 가면 하루면 족하는 거리를 건너기위해 산 속 험준한 길에 들어섰던 스님이 비에 다리가 썩어 떠내려갔다는 얘길 듣고 비를 피하기위해 들어간 오두막에서 농부로 보이는 사람, 등짐장수로 보이는 사람 그리고 산속에서 만났던 사내와 화려한 남보랏빛 기모노를 입은 여인등 몇몇의 남녀와 마주치게 된다. 악천후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긴 밤, 에도에서 유행하는 백가지 괴담이나 나누는 것이 어떻겠냐는 어행사의 제의로 산묘회(인형사) 오긴의 '언니 리쿠와 사람을 홀리는 고양이 이야기가 시작되고 오긴의 이야기를 받아 잡곡 도매상을 꾸려나가는 도쿠에몬이 '팥을 일까 사람을 잡아 먹을까 쏴락 쏴락'하는 팥 이는 귀신의 독특한 이야기도 재미나게 들었다.
중간에 수수께끼 작가 모모스케에 대한 얘기가 잠깐 나오는데 그는 여러 지방의 괴담을 탐문하고 수집하는 것을 더없는 즐거움으로 삼고 있는 특이한 사내로 그러한 이야기를 모아 언젠가 백가지 괴담집을 개판할 생각이라길래 이 사람을 중심으로 수백가지의 이야기가 밤 깊어가는 줄 모르고 시작되나보다 그렇게 예측만 했는데 뒤늦게 보니 그건 아니더라는~
하나 둘 재미나게 펼쳐진 이야기 속에서 어느순간 이 모든 이야기들을 잠재울만한 사건이 벌어지고 해결된다. 그 과정이 그 어떤 괴담보다 더 신기하고 믿기지 않더라. 그럴수밖에 없는게 괴이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잔머리 모사꾼 마타이치를 비롯한 인형사 오긴, 신탁자 지헤이등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파놓은 교묘한 함정이었던 것. 나처럼 그들이 들려주는 괴이한 이야기에 정신이 쏙 빠졌다면 처음부터 다시 읽어내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읽고 놀라고, 또 감탄하게 되는~ 이런 기묘한 이야기 스타일이 너무나 맘에 든다. (갠적으로 '하쿠조스' 이야기 결말이 너무나 맘에 들더라.)
따뜻하면서 슬프고, 안타까우면서 화나고, 무서우면서도 슬픈 이야기들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울고 웃고 시기하고 죄를 짓는 너무나도 나약한 사람들. 그래서 그런지 '가타비라가쓰지'의 마지막장. 마타이치의 "슬프군요, 인간이란 존재는" 이 말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