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병실
오가와 요코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수첩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진짜 현실이란 거, 대체 어디에 있을까.

나나코가 말하는대로 우리는 자신들이 진짜라고 믿고 있는 시간이나 감각이나 관념에서 그녀를 떼어 내 '신천지'에 격리했어.

그리고 우리가 믿고 있는 것 어쩌면 좀 더 큰 환상에 감싸여 있는지도 몰라. 전에 그녀가 코스모스를 산더미처럼 뽑아다 방 안에 내동댕이쳤을 때

나나코는 그녀의 비정상성을 인정하는 게 두려워서 미친 건 자신 쪽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버렸지?

정상과 이상, 진실과 환상의 경계선은, 그런 식으로 애매모호한 것이라서 누구도 결정할 수 없는게 아닐까 ?" [p.124]

 

이 책 완벽한 별실은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유명한 오가와 요코의 단편집이다.

완벽한 병실, 호랑나비가 부서질 때, 식지 않는 홍차, 다이빙 풀등의 4개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그 어떤 이야기도 읽어내려가기가 쉽지 않았다.

정상과 이상, 진실과 환상의 경계선을 아슬아슬 애매모호하게 표현된 글들로 이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참을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슬픔, 아픔, 고통도 어느것하나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표현한듯 안한듯 아리송 하기에 어떤 타이밍에 감정의 끈을 놔야할지 놓쳐버렸다고나 할까.

이렇게 적나라하게 적힌 감정의 홍수인 글속에서도 이런 감정을 표현하기 힘든것을 보니 . .

 

완벽한 병실은 죽음을 코앞에 둔 남동생이 병원에 입원하면서 남동생을 간병하는 동안 병실에서 일어난 매우 투명하기마저 한 나날을 누나의 시선에서 그려 내고 있다.

달랑 둘뿐인 남매. 스물한 살 된 청년의 죽음. 그 속에는 부모님의 이혼, 강도사건에 휘말려 돌아가신 엄마의 이야기도 들어있다.

병실을 좋아하는 그녀. 그곳이 좋은 건 생활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먹다 남은 반찬 같은 것도, 기름때도 없고 먼지를 흠뻑 빨아들인 커튼도 없고 상하기 시작한 오이나 곰팡이 핀 오렌지 따위가 없는 완벽한 곳이라서.

누가 그녀에게서 생활을 뺏어간 것일까 . . .

"누군가가 죽으면 남겨진 사람들은 모두 그 사람과 관련된 온갖 후회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건가 봐." [p.25]

 

호랑나비가 부서질 는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게 되자 남자친구와 함께 요양시설 '신천지'에 할머니를 입원시키러 가는 여자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죽은 날, 손을 잡아 주려는 사에(할머니)를 거부한 채 봉제 인형의 귀를 깨물며 슬금슬금 현관에 들어서던 날부터 내내 둘이서 살아왔던 집.

어머니는 아버지의 뇌에 종양이 생겼을 때, 아버지가 아닌 타인의 아이를 품고 있었다 (그게 나라는) 이야기도 함께 . . .

"떨어져 나간 건 그녀 쪽인데, 그럼 남은 부분인 내가 있는 장소가 정말 정상적인 현실인가 하고 생각하면, 자신이 없어.

그래서 똑같은 혼잣말을 싫증도 내지 않고 되풀이하고 있는 거야." [p.122]

 

식지 않는 홍차는 중학교때의 동급생, 교외의 바다와 가까운 죽은 동창생의 상갓집에서 재회한 동창생 K군과의 묘한 교류를 그려 내고 있다.

어떤 사소한 일이라도 말로 표현하는게 어려워 상대를 썰렁하게 만들거나 목소리가 너무 작거나 침묵이 너무 길어 언제나 말하는 것이 안타까운 후회로 몰고 와 입술이 바짝 말라 버릴 만큼 오랜 시간 침묵하고 있던 나를 기억해주는 그. 그와 연락처를 교환하고 헤어진 지 얼마 후 그의 집에 초대받아 놀러가 그의 여자친구와도 어울려 지내는 행복한 시간.

'사자 죽이기'라는 식물이야기가 너무도 기억에 생생했다.

"그리움 때문이지. 인간은 누구든 그리움이라는 것을 좋아하지?

고향이나 모교에 찾아가 옛날 그대로의 풍경을 마나고, 그걸로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즐기는 거야.

그렇다고 딱히 뭐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그녀도 그리움이라는 그 마음을 좋아해." [p.210]

 

다이빙 풀은 고아원을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고아들과 함께 성장한 여고생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신과 신자를 이어주는 교회 목사님이고 영광원 원장님이다. 영광원은 고아원으로 나는 영광원에서 태어난 유일하게 고아가 아닌 아이다.

태어났을 때의 몸무게나 키의 기록도 없고 먹물에 찍어 놓은 발바닥 모양도 없는 앨범. 우리 가족 세 사람의 스냅사진 한 장도 없는 앨범을 한없이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이 보여지는 듯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일이 있고, 나에게 가장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일이 영광원이라 했을까. 오죽했으면 그들처럼 본인도 고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싶은 -

갠적으로 4가지 단편중 그나마 이해하기 젤 쉬었던 내용이었던 것 같다.

내가 영광원에서 태어난 뒤부터 날이면 날마다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장난질이며 싸움질, 웃음소리와 화난 고함 소리 틈새에서 반드시 누군가는 울었다.

나는 그 울음 소리를 열심히 사랑하려고 했다. 나는 누구도 양부모가 되어 주는 사람이 없는 고아였기 때문에.

영광원에서 나갈 수 없는 단 한 사람의 고아였기 때문에. [p.249]

 

우리가 흔히 읽는 평범한 그런 대중소설과는 너무도 다른 침착함이 배어 있는 세련된 문장속 숨겨진 어두움.

읽으면 읽을수록 흠칫 거려지게 만드는 병적인 관심. 그리고 상실감이 주는 아픔들.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이 마음속으로 보고 있는 마음의 풍경이라는 글귀가 떠오른다.

다음엔 오가와 요코만의 맘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만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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