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 티쓰
사카키 쓰카사 지음, 현정수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히로, 나는 왕자님을 찾은 것 같아.

 

상당히 소녀적인 표현이라서 부끄러웠지만 거기에는 깊은 의미가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을 '공주님' 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요쓰야 씨는 나에게 수수께끼를 풀게 하여 치과 공포증을 조금씩 낫게 해주었다.

내 치과 공포증은 오랫동안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았던 마음의 미궁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요쓰야 씨는 일부러 내 마음속 미궁에 발을 들인 것이다.

마치 용사처럼.

그리고 깊은 장미 덤불 속에 사로잡혀 있는 나의 마음은 언젠가 요쓰야 씨의 섬세하고 자상한 손길에 의해 구원받을지도 모른다.

꼭 그렇게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세탁소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재미난 일들로 가득했던 책 '끊어지지 않는 실' 다음으로 치과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신데렐라 티쓰'

신데렐라 티쓰는 방학을 맞아 아르바이트 자릴 찾던 대학생 가노 사키코가 엄마의 소개로 시나가와 덴탈 클리닉에 일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다섯가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조금은 멀리 하고픈 치과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된 것도 좋았지만 사키의 눈물에 이나 잇몸 사이에 넣어서 타액을 흡수시키는데 쓰는 담배 필터 크기의 봉 모양 탈지면을 카운터에 좌르륵 펼쳐놓는가하면 멸균거즈를 산더미처럼 쌓아놓는 연애초보 요쓰야와 사키의 이야기에 나까지 가슴 두근두근 설레는건 왜인지 ~

 

어릴적 충치가 발견되 엄마와 함께 치과에 갔다가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린 아저씨들이 반짝이는 은색칼 같은것을 들고서 달려들어 입안을 들여다보고, 드릴을 멈추지 않고, 입안을 헹구자 붉은피가 쏟아졌던 기억들. 죽느냐 사느냐 공포속에서 헤맸는데 울며불며 한참 소란을 피워 얼마나 힘들었는줄 아냐는 엄마의 핀잔에 더더욱 싫은 곳으로, 꼴도보기 싫은 곳이 되어버린 치과에서 접수 안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건 엄마의 소개, 다다시 삼촌이 일하고 있는 곳이라 거절하지 못하고 분위기에 휩쓸리듯 결정된 것.

시나가와 델탈 클리닉의 멤버는 원장님과 의사 둘, 치과 치위생사 셋, 사무원이 한명, 치과 기공사등으로 이뤄져있다. 아슬아슬 할아버지가 되기 직전의 시나가와 원장님과 다다시 외삼촌, 나루세 선생님, 가노선생님, 나카노 교코, 가스가 유리, 접수창구 사무를 보고 있는 가사이 미즈에. 기공사인 요쓰야 겐고. 이곳이 다른 곳과 차별화되는 것은 치과 질환 치료는 물론 환자가 최대한 편안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곳이라는 것. 실내 인테리어는 산뜻하고 화장실과 별도로 메이크업실이 있는 곳. 환자를 '손님'이라고 부르고 진찰권을 '멤버스 카드'라고 부르고 접수안내원이 있고, 귀중품을 맡길 수 있는 '물품 보관 시스템'이 있는 병원이라면 나도 한번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무엇보다 제일 좋은건 '잡담'이라 불리울만한 이런저런 대화를 통해 고객의 생활이나 직업을 반영시켜 치료에 활용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월등한 점수를 ~

 

"저는 말이죠,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좋아요.

자신이 하는 일을 충실히 파악하고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 말이예요" [p.227]

엄마에게 속아 일할게 될 곳이 치과인지도 모른채 찾았던 이곳에서 일하게 되면서 사람들을 직접 보고 그들이 환자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게 되고 자신처럼 치과 공포증이나 기타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치과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날이 갈수록 환자들과 능숙하게 대화도 하고치료를 받겠다는 용기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작은 일부터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으쌰으쌰 힘을 내게 되는것 같다.

 

오키나와의 숙박에서 숙식하며 일하고 있는 사키의 친구 히로와의 통화에서 '일기일회'란 말이 언급된다.

시시콜콜 꼬투리를 잡으며 항의하는 골치아픈 손님도 있지만 두 번 다시 못 만날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쌀쌀맞게 대하면 나중에 기분이 찝찝해진다며 누구에게든 똑같이 대하려 노력한다는 히로. 

사토 다카코의 말해도 말해도라는 책 속에도 '일기일회'에 대한 언급이 있다.

일기일회(一期一會)라고 한단다.

다도의 마음이야. 똑같은 다도라는 건 결코 없다. 어느 다도회나 생애 단 한 번뿐이라는 마음을 가지라는 말이야.

그해, 계절, 날씨, 모이는 사람들, 그들 각자의 마음 모양, 그 모든 것이 다도회 때마다 달라.

그렇기 때문에 매번 귀찮은 절차를 거치고 같은 걸 반복하면서 연습하는거야. 단 한 번뿐인 그자리에 임하기 위해서 말이지.(말해도 말해도 中에서)

하루하루 반복되는 지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생각하기 일쑤일때 이 말이 내게 얼마나 큰 충격을 줬는지 모른다. 나태한 생활을 하고 있던 나를 채찍질 하게 만들었다. 이세상에 똑같은 것은 없다는 생각을하며 매일매일을 재밌게 신나게 보내게 될 수 있는데 큰 보탬이 됬었는데 이 글을 읽는 다른분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시간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입니다. 이 글을 첨 읽었을때와 비슷)

 

눈에 보이는 병과 보이지 않는 병.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홀로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다. 나도 언젠가 우리 병원의 다른 사람들처럼 누군가를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 [p.131]

사키가 의료 사무쪽을 열심히 공부해 독일로 유학간 요쓰야와 대등한 입장에서 일에 대해 얘기하고 사랑을 키워가는 신데렐라 티쓰 2부의 이야기도 만들어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 !!!

 

항상 자기를 '작은' 사람이라 표현했던 사키. 치과에서 일을 하면서,사랑을 하면서 . .사람이 사람에게, 사랑이 사람에게 변화시킬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모습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크리스마스지만 별다른 계획이 없던 평범한 휴일이었던 날. 왜 이렇게 재밌게 볼만한 로맨틱 코미디가 없는걸까 안타까워하다 계획없이 보게 된 '과속스캔들'과 함께 이 책 신데렐라 티쓰는 2008년을 보내는 나에게 너무도 행복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어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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