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박생강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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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를 위해 사우나 매니저로 일하는 소설가 태권, 월급이 나온다는 이유로 반값 연극을 하는 소설가의 여자 친구 공 그리고 대한민국 1%의 사우나 회원들과 매니저를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설을 끝까지 다 읽은 후 간간히 접어두었던 페이지를 펼쳐본다
'나는 아직 젊다. 그건 이 사회에서 누군가가 나를 털어갈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게 그들이 말하는 열정의 힘이다'

'나는 바닥이라고 바닥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겁니다. 내가 저 사람들한테 흠 잡히고 무시당하면 그대로 폭발할지도 모르니까요’

'게으를 권리. 게으르게 늘어질 권리. 그건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다 자연스럽게 누려야 할 권리지. 언젠가부터 우리 인간들만 그걸 죄악시하게 되었지만’

'아마 그들은 자연스럽게 몸에 밴 메너 있는 미소와 매너 있는 배려를 갖추고 있을 터였다. 우리처럼 먹고 살기 위해 몸에 익힌 서비스형 매너가 아니라’

‘내가 헬라홀 남자들한테 배운 게 그거야. 악착같이 챙기는 거.’

‘그제야 헬라홀이 내 발목에 채워놓은 족쇄가 생각보다 단단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 족쇄에는 아마 ’먹고사니즘 Made in Korea’라고 새겨져 있겠지‘

‘하지만 왜 이 소설의 주인공은 고민하지 않는 걸까? 왜 내가 그곳에서, 그런 환경에서 일해야한 하는가, 하는 인간으로서, 남자로서, 작가로서의 고민 말이야.’
‘알잖아, 투명해지잖아. 사람이 물처럼 투명해지잖아.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변하잖아. 주르륵 흐르고, 또 미끄러지고, 아무것도 없어지고, 그러면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보고 관찰하는 게 전부 잖아. 무언가 복잡하게 생각하면 엉켜버리니까.‘

이렇게 내 기억에 남겨진 문장에는 이 사회가 들어있고 내가 들어있는 것 같다. 철저히 자기 계급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사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나를 포함한 다수의 우리 모습이겠지. 뭔가 씁쓸하기도 하고 뭔가 투명해지는 느낌이다.
읽는 내내 헬라홀(:세탁물 구멍)이 왜 자꾸 등장하는지 왜 자꾸 소리를 내는지, 왜 이 사우나를 헬라홀이라 칭하는지 궁금했었는데 그 의미를 소설 가장 끝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헬라홀은 1퍼센트의 사람들만, 혹은 자신을 1퍼센트라고 믿는 사람들만 빠져드는 어마어마한 구멍이고 영원을 꿈꾸지만 훅 꺼져 사라질 때까지 빠져나가지 못하는 구명이라고 한다. 나는 1퍼센트가 아니니 핼라홀은 아니겠지만 나만의 구멍이 또 나만의 관점이 있겠지 싶다.

책 뒷표지 김성곤 문화평론가의 글을 읽다가 궁금해진 알레고리 기법. 좀 찾아보니 알레고리는 복잡하고 추상적인 의미를 인물이나 사물에 비유해 상징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기법이라고 한다. 즉 표면에 이야기와 속의 이야기가 따로 있는 표현기법. 내가 이해한 것 외에 이 소설의 모든 인물, 사건, 배경 등이 어떤 조롱과 풍자, 의미가 담겨있는지 궁금해진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첫 제목 ‘살기좋은나라?’가 아니라 ‘우리 사우나는 JTBC안봐요’가 훨씬 더 알레고리 기법에 충실한 제목으로 이 소설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잘 가요 그리고 이상하게 부럽네’ 그만두는 태권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팀장의 멘트. 우리 이런 멘트 너무 익숙하지 않나?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들에게 항상 했던 그 인사...
’먹고사니즘 Made in Korea’ 족쇄를 차고 사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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