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원 작가의 이름을 듣게 된 것은 영화 ‘소원’을 통해서였다. 솔직히 ‘소원’은 스토리를 듣고 너무 아플 것 같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책을 읽을 수 도 없었다. 피해자를 보듬어 주기보다 평상시에 어땠길래, 대의를 위해서 그랬겠지, 그 때는 어쩔 수 없었지 라는 사회의 집단적 가해가 현실이라는 것이, 나도 그 사회의 일원이라는 것이 나를 불편하게 했던 것 같다.몇 해가 지나 드디어 소재원 작가를 만나게 해준 ‘터널’. 우선 책 프롤로그에서 소재원 작가가 이야기한 처녀작 ‘터널’을 세상에 내놓는 마음이 참 좋았다. ‘처녀작은 처녀작답게 남아야 정답일 것 같다’는 그 마음.작가의 말대로 ‘독자를 배려하지도 신경 쓰지도 않는 소설, 독자들과 줄다리기를 하는 작품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해주는 작품 ’터널‘을 읽기 시작했다.이야기는 터널이 무너져 갇힌 이정수가 깨어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딸의 생일이라 케잌과 선물을 사서 집에 가던 평범한 가장 이정수. 그가 부실공사로 무너져내린 터널에 갇힌 날부터 터널 밖의 그의 아내 김미진과 딸, 구조작업을 벌이는 전문가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1년간의 이야기이다.기억에 남는 문장들을 적어보자면 이정수의 편지 중 “사람들이 왜 보석보다 아름다운 별을 바라보지 않는지 알아? 이유는 말이지 매일 밤만 되면 나타나기 때문이야.” 이정수의 말대로 항상 곁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소중함을 모르던 주변에 모든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소설 결말에 등장하는 “대중은 면책을 받기 위해 자신들의 역겨운 상상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욕망을 배설할 상대가 사라지자 여론은 잠잠해졌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상대를 찾느라 출근을 하거나 잠에서 깨어나면 인터넷 뉴스를 뒤적인다. 꿈틀거리는 잔악성을 어떻게 해서든 해소하고 쾌락을 찾아야 했다.”“정의는 옳고 그름을 떠나 다수가 정정당당함을 주장하면 그것이 바로 정의가 되는 것이다. 결국 치졸하고 사악한 무엇가일지라도 다수가 옳다 하면 정의의 가면을 당당히 쓸 수 있는 것이다. 이미 그들은 스스로에게 정의를 부여하고 그들과 어긋난 생각들을 이단이고 악이라 부정하고 있었다.”책을 읽다가 휴대폰을 보면 바로 오늘 뉴스에 이정수가, 김미진이 등장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는 이야기이다. 현실처럼 느껴지는 그런 이야기. 그래서일까 많이 울고 많이 화가 나기도 했다. 너무 생생해서 무서운 소설 속 상황이 나,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정의’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