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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머무는 마음 - 시가 피어나고 그림이 머무는 자리
나태주 지음, 나난 그림 / OTD / 2026년 9월
평점 :
나태주 시인의 시와 나난 작가의 꽃 그림이 한 권에 나란히 놓인 시화집이다. 책을 펼치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여백이다. 짧은 시 한 편과 꽃 한 송이가 한 면씩 차지하고 있어, 읽는다기보다 머문다는 말이 어울린다. '너도 꽃을 피워라', '사랑이여, 조그만 사랑이여', '다만 사랑해서 좋았단다' 세 장으로 나뉜 구성도 봄에서 이별까지 한 계절을 천천히 지나가는 느낌을 준다.
시는 익숙하다. 「풀꽃」처럼 이미 많은 이들의 마음에 자리 잡은 작품도 있고, 「꽃밭 옆」처럼 꽃들과 주고받는 인사 같은 짧은 시도 있다. 그런데 곁에 놓인 그림이 시를 다르게 읽게 한다. 민들레 한 송이, 고개 숙인 나리꽃 몇 송이가 시보다 앞서 말하지 않고 조용히 옆을 지킨다. 작업 노트에서 작가가 그림이 시보다 더 많은 말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고 밝힌 대로다.
가장 오래 머문 시는 「괜찮아」였다. 서툴러도 괜찮다고, 조금쯤 틀려도 괜찮다고, 세상에 올 때 모든 걸 미리 알고 온 사람은 없다고 말하는 시다. 요즘처럼 경쟁이 당연하고 성과와 성공이 사람의 가치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서툰 것이 곧 인생이라는 말은 낯설면서도 묘하게 마음을 놓이게 했다. 매일 평가받고 비교당하는 일상 속에서 연습하듯 담담하게 살자는 문장이 누군가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옆에 놓인 붉은 꽃 한 송이가 화려하지 않고 소박해서 더 그랬다.
미술치료 현장에서 말로 꺼내지 못한 마음을 꽃에 맡기는 사람들을 지켜봤다는 작가의 고백도 인상 깊었다. 꽃이 아름다운 대상이 아니라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는 말이, 이 책의 모든 그림에 적용되는 설명처럼 느껴졌다. 어린 자식들을 위해 비단 위에 꽃 자수를 놓던 어머니 이야기까지 읽고 나면, 이 그림들이 어디서 왔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빠르게 넘기는 책이 아니다. 하루 한 편씩, 시 한 줄과 꽃잎 한 장을 오래 바라보게 되는 책이다. 지친 저녁, 책상 한쪽에 두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유난히 서툴렀던 날에는 이 시를 다시 펼치게 될 것 같다.